10년이 넘도록 해마다 공직자 재산이 공개되면 그들이 엄청난 부자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와 함께 재산증식의 투명성·정당성에 대한 의혹이 숱하게 제기되어 왔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장관급 인사들이 잇달아 의혹에 덜미가 잡혀 도중하차하고 있다. 이 따위 일이 그치지 않는 것은 공직자윤리법이 엉터리이기 때문이다.
공직자윤리법을 제정한 취지는 공직사회의 부정부패를 척결하자는 데 있다. 그런데 이 법은 재산을 4급 이상은 등록만 하고, 1급 이상은 관보 또는 보도를 통해 공개만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신고내역을 검증할 아무런 장치가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누락·은닉·축소 신고해도 그 진위를 확인할 방도가 없는 엉터리 법이다.
이 법에 따라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등에 설치된 각 윤리위원회는 권한과 기능이 애매하다. 그러니 각 위원회의 심사기준이 동일하지 않고 임의성이 개입될 소지가 많다. 외부에 위촉한 위원은 실무능력이 없고 내부에서 발탁한 위원은 본인이 심사대상이라는 문제점을 가졌다. 실무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행정부의 경우 중앙공무원만도 신고대상자가 7만5천여명이나 된다. 그런데 조사기간은 3개월에 불과하다. 사실상 검증작업이 불가능하다.
여기에다 직계 존·비속의 재산에 대해서는 고지거부권을 인정하고 있다. 재산을 부정하게 취득했더라도 부모나 자식의 명의로 바꿔버리면 그만이다. 선출직 입후보자도 재산신고가 의무화되어 있지만 공표이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의 재산신고 조항이 이 법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변칙상속·불법증여를 통해 재산을 얼마든지 위장분산할 수 있다.
부동산은 전산망을 통해 보유현황을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실사기능이 없기 때문에 얼마든지 속일 수 있다. 부동산은 타인명의로 이전하거나 명의신탁을 해놓으면 파악이 용이하지 않다. 농지법은 아직도 농지소유를 엄격하게 규제하는 편이다. 불법적으로 농지를 취득했더라도 서류상으로만 주민등록을 이전하면 그만이다. 또 위장소송을 통해 채권을 농지로 변제받은 것처럼 꾸미면 된다. 미공개 정보를 이용하여 개발제한구역이나 개발예정지에서 투기이득을 챙겼어도 알기 어렵다.
해마다 많은 공직자들이 주식투자를 통해 재산을 증식했다고 밝혀 왔다. 주가조작사건이 무수하게 터졌지만 공직자의 주식투자에 대한 체계적인 규제장치가 없다. 경제정책·기업활동에 관한 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지위·권력을 가진 공직자가 유관주식에 투자할 가능성이 높다. 장관이라면 소관부처 이외에도 국무회의를 통해서, 국회의원이라면 상임위를 통하여 고급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법에도 공직자의 유관기업에 대한 주식투자를 검증할 아무런 장치가 없다.
이 법에는 계좌추적권을 부여하지 않아 금융자산의 누락·은닉신고를 확인할 수단이 없다. 그래서 동산은 거의 신고하지 않는다. 은행예금, 유가증권, 외화를 거의 보유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장롱에 감춰둔 귀금속, 보석류, 서화류, 골동품 등을 신고할 리가 없다. 부인이 보석반지를 하나도 갖지 않았다거나 해외여행을 뻔질나게 다니면서 외화가 한푼도 없다고 신고한다. 그래도 진실성을 물을 수 없는 것이 이 법의 맹점이다.
이런 엉터리 법을 뜯어고치라는 여론이 1993년 제정 당시부터 비등했다. 그래도 정치권은 꿈쩍도 않는다. 어차피 부패방지위원회를 만들었다면 역할과 기능을 부여해야 한다. 실사기능을 부패방지위원회로 일원화하고 공개내용의 성실성·정직성을 검증할 강력한 조사권·검사권을 부여해야 한다. 여기에는 금융감독원과 국세청에 대한 자료청구권도 포함해야 한다. 그래야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다. 부패의 온천인 공직사회를 그냥 두고는 부정부패를 척결하지 못한다. /김영호(시사평론가)
허울좋은 엉터리 공직자윤리법
입력 2005-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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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12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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