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 농촌현실이 참담하다. 농민들이 죽음으로 농촌을 살리려고 몸부림치나 아무런 메아리가 없다. 겨울 들판을 가로지르는 찬바람만큼이나 싸늘하다. 지난 두 달새 쌀 협상 비준을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만도 셋이나 된다. 시위 중에 여럿이 목숨을 걸고 분신을 시도하기도 했다. 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에 맞아 죽거나 중태에 빠졌으나 노무현 정부는 못 본 척한다. 언론도 나을 게 없다.
이 나라의 농민들이 멀리 홍콩에까지 가서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에 항의했다. 현지언론은 그 모습을 담아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의미를 말했다. 하나 이 나라 언론은 먼 나라 소식 마냥 간단하게 취급했다. 농업이 얼마나 박대받고 있는지 말하고도 남는다. 하늘도 무심한지 호남지방에 연이어 폭설이 내려 비닐하우스고 축사고 폭삭 주저앉았다.
이 나라 식량자급률은 25.3%에 불과하다. 쌀이 자급되니 이나마나 된다. 쌀을 빼고 나면 5% 안팎에 머문다. 그런데 국회가 쌀 협상을 비준하여 내년 3월께 부터는 수입쌀이 시판된다. 농가의 절대수입원이 쌀인데 쌀값이 떨어지면 농사를 지을 수 없다. 살 길이 막히니 그들이 거리로 나서 호소하는 것이다. 아무리 목청을 돋우어도 정부도 국회도 들으려하지 않는다.
지난 달 15일 서울 여의도 농민시위에 나섰던 한 농민이 사망하고 한 농민은 하반신이 마비됐다. 농민들은 맞아서 죽고 병신이 되었다고 주장하나 노무현 정부는 별로 원인을 규명하려는 것 같지 않다. 여론이 잠잠하니 아마 더 기다려 보자는 투 같다. 한 달이 지나서야 경찰은 과잉진압의 책임을 물어 현장 지휘자를 직위해제했을 뿐이다. 그것도 사인을 분명히 밝히지 않고 말이다. TV화면을 보면 경찰들이 시위자들을 방패로 마구 찍는 장면을 자주 보는데 이것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전두환 정권 치하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일어났다. ‘탁’하고 탁상을 쳤더니 ‘억’하고 죽었다는 것이 당시 경찰발표였다. 그 뻔한 거짓말로 국민을 우롱하더니 국민의 분노에 결국 정권종말로 이어졌다. 노태우 치하에서도 시위에 참여했던 강경대씨가 경찰의 과잉진압에 숨져 정치적-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김영삼 정권 하에서도 1996년에 이어 1997년에도 대학생이 강경진압에 죽어 정권의 폭력성이 지탄받았다.
그 때와 달리 지금은 국가인권위원회란 대통령 소속 정부기구가 있다. 사소한 인권침해에도 많은 의견을 제시해 왔다. 그런데 왜 농민의 죽음에는 입을 다물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사형폐지론마저 힘을 받고 있는 현실에서 생사람이 죽었다면 원인이라도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이러니 농민들이 억울해하고 분노를 삭이지 못하는 것이다.
지난 13~18일 홍콩에서 WTO(세계무역기구) 각료회의가 열렸다. 농업시장 추가개방에 반대하여 세계 각지에서 1만여명의 농민들이 모여 시위를 벌였다. 자국의 농업을 살리려고 말이다. 한국에서도 1천500여명이 참석했다. 미국의 기업농은 막대한 정부지원을 받는다. 그 거대기업이 식구끼리 먹고 살려고 농사를 짓는 세계의 가족농을 말살하고 있다. 그것에 항의하여 한국농민들이 남의 나라에 가서 3보1배의 고통을 감수한 것이다.
그런데 그 때 한국정부 대표는 농업시장을 양보할 수 있다는 요지의 기조연설문을 미리 돌렸다. 말썽이 날지 두려웠는지 나중에 고쳤다고 한다. 이것이 노무현 정부의 농업정책 기조라고 보면 틀림없을 것이다. 프랑스는 농업인구가 3.5%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농업을 지키기 위해 미국과 영국의 압력을 뿌리치고 농업진흥책을 펴고 있다. 식량을 자립하지 못하면 국제사회에서 정치적-경제적 독립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김 영 호(시사평론가)
메아리 없는 농민들의 죽음
입력 2005-1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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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20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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