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지방자치를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말한다. 지방자치제가 지난 1991년 4월 부분적으로 복원되었고 오는 5월31일 4기 선거가 실시된다. 다시 출범한지 15년이나 된 셈이다. 그런데 지방자치에 대한 주민의 평가는 아주 인색한 것 같다. 자질도 능력도 없는 인사들이 지방정치무대를 독차지하고 허튼 짓이나 일삼고 다녔으니 말이다. 그러니 풀뿌리 민주주의가 착근하기는 커녕 비리의 온상처럼 비치는 게 사실이다.

여러 여론조사를 보면 지방자치에 대한 주민의 반응은 부정적이고 냉소적이다. 젊고 학력이 높을수록 그 같은 반응을 나타낸다. 지역적으로는 대도시 거주자일수록 심하다. 그러니 단체장이나 의원이 누구인지 모른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고작 광역단체장의 이름이나 아는 수준이다. 이러니 투표율이 낮아 무자격자 무능력자들이 지방자치를 독무대처럼 알고 행세한다.

그 동안 단체장들이 줄줄이 쇠고랑을 찼다. 지난 10년간 사법처리된 단체장만도 무려 150명이나 된다. 거의 이권사업에 끼어들어 한탕 해먹다 들통났다. 여기저기에 공천헌금을 냈으니 본전을 벌충하려고 먹자판을 벌였을 것이다. 의원들이 파렴치 행위로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은 사례는 정말 무수하다. 지방자치가 토호의 소굴처럼 비치니 많은 주민들이 외면하고 그 무관심이 그들을 더욱 발호하게 만든다.

감사원이 지난 9일 발표한 전국 250개 지방자치단체의 운영실태에 대한 감사결과를 보더라도 한 단면이 드러난다. 무엇보다도 예산낭비가 심하다. 지난 5년 동안 타당성조차 검토하지 않은 채 추진했다가 취소, 중단한 사업이 165개에 달한다. 이로 인한 예산낭비가 4천여억원에 이른다. 2004년 이후 발주한 1천만원 이상 공사 중에 수의계약이 76%나 차지한다. 신축 지방청사의 태반이 행정자치부가 심사한 면적보다 크다. 그 많은 축제도 절반 가량은 즉흥적으로 개최한 사실이 드러났다.

공무원의 비리 또한 심각하다. 인사담당자가 자신의 근무평정을 조작해 승진하는가 하면 따로 은행계좌를 만들어 공과금을 받아 착복하기도 했다. 시장, 군수 18명이 인사권을 멋대로 행사하여 징계성 주의를 받았다. 단체장에 선출되면 선거에 기여한 공무원을 중용하거나 다음 선거를 겨냥해 선심성 인사를 일삼는다는 사실이 뒷받침되는 대목이다. 양심적이고 전문적인 인사들이 의회에 진출하여 감시와 견제의 역할을 한다면 이 꼴은 되지 않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단체장은 아무나 하기 어렵다. 지역에서 지명도도 높고 정당기반도 갖추어야 하니 그것은 정치인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의회는 다르다. 양심적이고 유능한 인사들이 진출할 여지가 넓은 편이다. 주위에 보면 그런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 교사, 은행, 기업, 언론, 관직 등 전문직에서 퇴직한 인사들이 지방의회에 진출해 새 삶을 살 가치가 있다. 전문영역에서 터득한 경험과 지식을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의미는 크다.

마침 지방의회 의원도 부단체장급 연봉에 준하는 대우를 해주기로 했으니 퇴직자들이 관심을 가질 필요가 높아졌다.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기초의원은 6천만원, 광역의원은 7천만원쯤 된다. 그런데 문제는 기초의원까지 정당공천제를 실시하기로 했다는 점이다. 토호나 건달들이 날뛸 마당을 마련해준 꼴이다. 국회의원, 대통령 선거에서 운동원으로 뛸 하수인을 심을 게 너무 뻔하다. 또 공천비를 받을 테니 본전치기라도 하려면 빼먹을 생각부터 앞설 것이다.

이제 지역주민이 깨어나야 한다. 그들이 의회를 장악하면 지방자치제를 차라리 폐지하는 게 낫다. 정치오염을 막기 위해서는 정당을 보고 찍지 말고 인물을 선택해야 한다. 전문적이고 양심적인 인사를 골라서 말이다. 그것이 내 고장을 살리고 나라를 구하는 길이다.

/(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