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은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가 많다. 주택, 환경, 건설, 교통 등 협의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고 또 끊임없이 생긴다. 같은 생활권인 수도권을 한 덩어리가 아니라 각각의 행정단위, 즉 자치단체의 경계를 기준으로 문제를 처리하려 할 때 마찰과 갈등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최근의 예를 두 가지만 들어보자.
서울시가 우면지구에 국민임대아파트를 짓기로 했다. 과천시 경계와 불과 2㎞ 떨어진 지점이다. 이곳에 3천가구 규모의 단지가 들어서면 가장 먼저 걱정되는 게 교통량 증가다. 과천시는 즉각 우려를 제기했다. 임대단지로 인해 양재~과천~인덕원간 도로혼잡이 심각해지고, 과천~우면 고속화도로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서울~과천 시계가 매일 러시아워마다 교통지옥을 겪는 것을 감안하면 당연한 걱정이다. 또한 임대단지 건설로 양재천 물길이 바뀌고 인근 녹지가 파괴될 가능성도 높다.
과천시는 이미 2004년 이 계획이 입안될 당시부터 이 문제를 논의해보자고 서울시에 요청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단 한번도 협의에 응하지 않았다. 서울시는 지금도 교통·환경영향평가를 적법하게 마쳤으니 과천과 의논할 일이 없다는 입장이다.
또다른 예는 지난 5월 서울시의 경기버스 광역노선 증차합의 번복을 들 수 있다. 지난해 4월 출범한 수도권교통조합이라는 곳에서 어렵사리 이끌어낸 합의를 서울시가 간단히 뒤집어버린 것이다. 증차를 허용하면 서울의 교통혼잡이 우려된다는 게 그 이유다. `서울시민의 편의를 위해서 경기도민은 가급적 서울로 들어오지 마시압.' 대충 이런 얘기다.
서울시 경기도 인천시가 어렵사리 만든 수도권교통조합이 매번 삐거덕거렸던 이유도 서울시의 이같은 오만불손한 태도 때문이었다. 같은 생활권인 수도권 지자체가 함께 풀어야 할 문제를 놓고 이렇듯 따로 놀았던 게 지금까지의 엄연한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김문수 도지사가 당선되자마자 `광역 수도권행정을 추진하겠다'고 처음 밝혔을 때 `옳거니!' 무릎을 쳤던 이유도 거기 있었다. 이제야말로 같은 생활권인 수도권의 산적한 문제를 시원하게 넓은 틀에서 해결해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감이 컸다. 물론 전례로 보아 이 역시 쉽지는 않겠지만 방향은 정말 잘 잡았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 구상에 `대수도권론'이라는 명칭이 붙으면서 이야기는 `삐딱선'을 타기 시작했다. 애초의 `광역협의행정'은 금세 증발하고 수도권의 경쟁력 강화 주장으로 초점이 바뀌었다. `자치의제'가 졸지에 `정치의제'로 둔갑한 것이다. 비수도권 단체장들이 즉각 공동전선을 형성해 수도권을 공격하고 나섰다.
사실 자치와 정치의 경계는 명쾌하게 갈라지는 게 아니다. 그러나 자치의 의의는 풀뿌리 차원의 생활 문제를 스스로의 자치력으로 풀어나가는 데 있다. 거대한 정치적 파워를 형성하고 슬로건을 내세워 국가 수준의 문제를 다루겠다고 나서는 건 이같은 자치의 상식을 벗어난다. 더구나 이 좁은 땅에서 자치단체별로 네 편 내 편 나눠 힘을 겨루는 양상이 확대되어서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수도권'론이 처음부터 대결구도를 의식했던 것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단순히 광역협의행정에 그럴듯한 이름을 붙이려다가 채택된 이름이거나 수도권의 장기 비전을 담아내기 위해 만든 조어이겠거니 소박하게 믿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처럼 불필요한 마찰이나 불러오는 논의라면 아예 지금 접는 게 낫다.
수도권의 삶의 질이 이대로 좋다고 믿는 수도권 주민은 거의 없다. 수도권이 힘을 합해 풀어가야 할 생활의 문제가 얼마나 많은가. `대수도권'이니 `소수도권'이니 헛된 논쟁을 할 시간이 있으면 머리를 맞대고 상호존중하면서 진짜 상생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일에 더 주력해야 하지 않겠는가.
/양 훈 도(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