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만큼 힘있는 자리에만 있어도 뭇사람들이 주변에 몰려든다. 그 힘이 두렵고 부럽고 또 존경스러워서다. 자연히 힘 가진 자는 위세를 부리고, 뭇사람들은 그 힘에 기대 적은 이득이라도 얻고자 안간힘 쓴다. 하다못해 옛날엔 대갓집 머슴만 돼도 어깨에 힘이 들어갔었다. 주변의 이웃들은 또 그들대로 대갓집에서 쌀 한톨이라도 빌릴 수 있을까 싶어, 그 머슴을 추켜세웠다. 봉건시대 권위주의시대 흔히 볼 수 있던 모습들이다.
1950년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가짜 이강석’사건도 다 그같은 바탕에서 벌어졌던 희극이다. 이강석이라면 당시 무소불위 권력을 누리던 자유당 2인자 이기붕의 아들이자, 대통령 이승만의 양자이기도 했다. 당연히 위세가 등등했을 것이다. 그런 이강석 행세를 했으니 경찰서장이든 군수든 칙사대접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후로도 비슷한 사건은 얼마든지 이어졌다. 장관의 친인척을 가장해 남의 땅을 가로채고, 특수기관원 행세를 하며 거액을 뜯어내는 등. 심지어 수년전엔 청와대 청소 직원이 청와대 과장을 가장해 거액을 챙기며 청탁을 받은 일도 있었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코미디같은 사건이었다.
머슴 정도만 돼도 위세부리던 상황은 지금도 별로 달라지지 않은 모양이다. 판사 행세를 하며 사기행각을 벌이던 30대 일용 노동자가 며칠 전 구속됐다. 공사 대금을 못받아 속앓이 하던 건설사 사장에게 접근, “대금을 받아주고 건축 공사도 수주하도록 해주겠다”고 속였다는 것이다. 가짜 판사는 이를 미끼로 자그마치 8천여만원이나 받아 챙겼다 한다.
특권층 권세부리던 독재정치나 권위주의 시대가 사라진지 오래인 지금도 그같은 행각이 벌어질 수 있다는게 놀랍다. 그토록 구태청산과 개혁을 외쳐왔는데도 아직은 부족한 게 많은 모양이다. 개혁은 이같은 후진적 사회의식부터 고쳐나가는데 있지 않을까 싶은데.
/ 박 건 영〈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