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 11일 낮에 서울도심에서 낭패를 당했다. 필자가 탄 차가 서울역 앞에서 한미FTA 2차 협상에 반대하는 시위대에 막힌 탓이다.

시위대원들 거의가 노조 등 각종 노동단체 소속이었다. 이들은 의기양양하게 무리를 지어 서울역 앞에서 맞은 편 남대문경찰서 쪽으로 차도를 무단 횡단하는데 그 대열은 끝이 없어 보였다. 열심히 일을 해야할 시간대에 오죽했으면 시위를 하겠는가 하며 이해도 되었으나 이로인해 서울역 앞 차도는 시위대와 차량, 기다리다 지친 승객들로 꽉 막히고 말았다.

몇몇 운전자들이 인근에 있던 경찰관에게 몇 마디 항의를 했으나 이 경찰관은 아무런 대꾸도 않다가 귀찮은 듯 자리를 뜨고 말았다.

승객 및 운전자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시위대를 향해 욕설을 퍼붓곤 했으나 소용없었다. 시위대들이 모두 건너갈 때까지 대책없이 기다려야만 했던 승객들의 마음은 참담함 그 자체였다.

지난주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포스코 본사 건물점거 불법시위는 싱겁게 마무리되었다. 주동자 58명이 무더기로 구속, 참여정부 출범이래 불법집회 관련 단일사건으로는 최대규모를 기록했다. 포스코측은 이번 불법점거로 입은 손실을 약 2천억원으로 추산하고 조만간 건설노조를 상대로 민·형사상의 책임을 물을 예정이다. 무려 2천500여명의 시위대가 8일 동안의 전쟁(?)에서 완전히 패퇴하고 말았던 이 사건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후유증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언론에서는 시위대들이 백기를 든 이유로 정부와 포스코측의 적극적이고도 원칙론적인 대응을 꼽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일부터 공권력 투입을 위한 초읽기에 돌입했으며 포스코측도 과거와는 달리 “노사협상의 당사자가 아니므로 협상에 개입할 수 없다”는 입장을 끝까지 고수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진단에 필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민주노총이 어떤 존재인가. 지난 2003년 KBS사장을 임명, 9일만에 갈아치울 정도로 무소불위의 권력집단이다. 이들은 “밀어붙이면 청와대도 굴복시킬 수 있다”며 공언하고 있는 판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이번에 순순히 항복한 것은 “해도 너무 한다”는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 탓이 아닌가 싶다. 국민들은 우리나라를 노조공화국이라고 규정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작금 들어 서민경제는 활력을 잃고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데 노조는 나라경제 걱정은 커녕 오히려 자기들의 이익에만 집착하는 형국이니 말이다.

목하 진행중인 현대차파업사태와 관련 “물만 1급수, 2급수가 있는 게 아니다. 울산시민도 현대차 정직원들은 1급 시민이고 1차 하청업체 직원들과 현대차 비정규직은 2급 시민이며 2·3차 하청업체 직원들은 3급 시민”이라는 비아냥이 작금의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이번 사태과정에서 드러난 노조지도부의 폭력성이다. 일부 노조원들은 목숨을 담보하면서까지 농성장을 탈출했다. 21일 새벽 농성장을 빠져나온 대부분의 노조원들은 패배감보다는 “지옥을 탈출한 느낌”이라며 안도감을 나타냈다. 그리곤 한결같이 지도부에 대해 불만을 쏟아냈다. 공권력보다는 사수대원들의 폭력성이 농성노조원들을 더 두렵게 한 탓이다.

울산지역 소상공인연합회 등의 현대차파업 철회요구에 민주노총 울산본부가 도심의 대형음식점에서 노조원들의 회식을 금지하는 ‘소비파업’지령을 내린 것은 해도 너무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은 중대국면을 맞고 있다. 노조 지도부도 이를 잘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종래 기업별 노조에서 산업별 노조로 전환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그렇다고 어렵게 얻은 기득권을 쉽게 포기하겠는가. 지나친 이기(利己)와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부르는 법이다.

우리나라 노동운동이 조지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을 닮아 가는 것 같아 뒷맛이 개운치 못하다.

/이 한 구(수원대경상대학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