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는 예술가를 특정의 재능을 소유한 소수자에 한정하기보다는 사람들 모두를 잠정적인 예술가로 간주했다. 즉 삶의 질을 향상하고 개선하고 미화하려는 노력이 사람들 모두에게 주어진 본능적인 요인으로 보고, 이로부터 예술이 존재하는 이유를 찾은 것이다. 사실 이로부터 삶의 한 형식으로서의 예술, 삶에 봉사하는 예술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예술은 때로는 삶이 결여하고 있는 것을 보충해 주고, 비감각적이고 비가시적인 비전을 현재화하기도 하지만, 이처럼 삶에 봉사하고 감각적인 현실에 천착한 예술도 있는 것이다.

지역미술활성화프로젝트의 한 방안으로 열린 `도시유목-Good Buy Incheon(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스페이스 빔, 21~27일)'전은 그 문제의식의 지평을 지역주민들의 현실적인 삶의 질에까지 확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로부터 공동체적 삶과 그 연대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삶의 한 형식으로서의 예술의 한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의 본 전시에서는 도시로서의 인천을 리서치한 과정과 성과를 각각 기억과 기록, 해석과 번역, 그리고 개입과 제안이라는 소주제로 묶어냈다. 그리고 스페이스 빔에서의 부대전시 `공공미술교육프로젝트 도시-樂-파티'전을 통해서는 본전시를 보충하게 했다.

이 두 전시의 이면에는 인천광역시가 공간상품화 전략의 일환으로 내세우고 있는 구호인 ‘바이 인천 프로젝트’에 대한 비평적 인식이 작용한다. 그 표면적 의미는 인천의 몸값을 업그레이드시켜 인천을 세계적인 도시로 만들고, 더 나아가 세계화를 견인하고 리드하는 중심도시로서 만들어 나가자는 장밋빛 청사진일 것이다.

그러나 작가들의 전시는 이 장밋빛 청사진의 이면에 가려진 허구를 겨냥한다. 즉 이 프로젝트의 구실이 되고 있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구호가 선진국의 일방 논리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인지함으로써, 이로부터 신제국주의와 후기식민주의의 그림자를 본 것이다. 그리고 그 프로젝트를 실현하기 위해 자투리로 남겨진 최소한의 녹지와 개펄마저 마구 파헤쳐질 난개발을 예감하는 것이다.

이로써 이 전시는 ‘바이 인천 프로젝트’에 공공연히 반영된 쇼비니즘을 문제시하는 한편, 인천을 상품화하려는 기획을 재고하게 만든다. 그 과정에서 일방통행식이 아닌 쌍방통행식의 합의와 공동체적 삶의 연대 가능성을 모색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생태도시로서의 인천을 복원하려는 기획에 맞춰져 있다. 그럼으로써 인천이라는 도시 자체를 리서치의 대상으로 삼은 도시주의의 한 사례를 보여주고 있으며, 예술이 삶의 한 형식이 돼야 한다는 현실주의의 한 전형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고충환(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