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부장님, 복잡한 법적인 문제는 전 잘 모르지만 제발 우리 애 다니는 학교 직영급식 좀 하게 도와주세요.” 무더위가 기승을 떨던 8월 초 늦은 밤에 한 학부모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그 후로도 몇학교 학부모들이 필자에게 전화로 같은 내용의 호소를 했다. 내용인즉, 인천의 13개 학교 위탁급식을 하던 대형 모 위탁급식업체가 부도 나 학교급식 중단통보를 해왔고, 학교는 방학중임에도 2학기 급식차질을 막기 위해 학교운영위원회를 열어 급식형태(직영이나 위탁)를 심의 결정할 수 밖에 없었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업체는 채권단과 합의가 잘돼서 급식을 재개할 수 있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해왔다는 것이다.

위탁급식업체측의 부도로 2학기급식이 정상적으로 되기 어렵다고 판단한 두 중학교는 이 기회에 직영전환하기로 학운위에서 심의를 했다. 교육청에 직영전환에 필요한 예산을 요청, 지원이 확정된 상황이라 더 이상 그 업체와 학교급식을 할수 없다며 해지통보를 하려 했다. 그러자 그 업체는 오히려 법적소송 운운하며 이런저런 이유로 학교를 압박했고 난감해진 학교는 여러차례 학운위를 거치면서도 갈팡질팡 못하는 상황이었다. 교육청의 개입과 조정을 통해 어느 정도 직영급식을 위한 정상화방안은 마련했지만 2학기 개학을 한 지금까지도 정상적인 학교급식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6월30일 학교급식법 개정안의 국회통과로 모든 초·중학교가 직영급식을 의무화한 상황인데 위탁급식업체에 의한 횡포가 웬 말인가 싶겠지만 이런 황당한 일이 아직도 버젓이 일어나는 것이 현실이다. 여름방학 내내 이 위탁급식업체와의 지난한 싸움을 하면서 직영급식이 된다면 힘들어도 당분간 도시락을 직접 싸겠다는 학부모의 의지가 있어 그나마 잘 해결될 것 같아 보인다.

온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대형 학교급식식중독사고가 있은 지 두달밖에 안됐건만 우리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벌써 다 잊은 것 같다. 학교급식이 도입된 이래 최대규모의 식중독사고라 온통 큰일이 난듯이 난리법석이었고, 부랴부랴 며칠만에 몇 년간 묵혀있던 `직영급식'을 골자로 한 학교급식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급식사고를 낸 업체가 국내의 최대 위탁급식업체중의 하나인 CJ푸드시스템이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학교급식법개정안이 통과되고, 식중독사고를 낸 CJ푸드시스템이 운영하던 인천의 17개 학교를 우선 직영급식으로 전환하겠다고 인천시교육청이 자신있게 발표할 때도 필자는 과연 학교현장에서 직영급식으로 쉽게 전환될까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위의 두 중학교가 위탁급식에서 직영급식으로 전환하려 노력하면서 겪는 어려움에서도 알수 있듯이 여전히 학교급식의 문제, 특히 위탁급식의 문제는 학교현장 곳곳에 남아있다. 학교급식을 직영으로 전환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적토대를 마련했어도 막대한 예산지원 문제, 학교관리자들의 직영급식기피현상과 의지부족, 위탁급식업체들의 끊임없는 방해공작등 넘어야 할 산들이 많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건강을 위한 안전한 먹거리 방안마련 및 급식업체에 대한 철저한 관리감독 책임은 일차적으로 정부와 교육당국에 있다. 개정 학교급식법이 초·중학교는 직영의무화시켰지만 고등학교는 식자재의 선정·구매·검수만 직영할수 있고 조리와 배식·세척업무는 위탁할 수 있는 등 여전히 불완전하고 개선의 여지가 많은 학교급식형태가 존속하고 있다.

법과 제도의 개선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우선시돼야하고 중요한 것은 학교급식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과 의식이 아니겠는가. 학교급식을 통해 이윤만을 챙기려는 급식업체, 학교는 공부만 잘시키면 되지 밥까지 신경써야하냐고 생각하는 일부 교육관리자, 그리고 집단식중독사고등 급식사고가 터질때만 잠시 위생실태파악과 특별점검 등 땜질식 대처방안을 하다 마는 정부와 교육당국이 먼저 각성해야 한다. 이런 근본적인 변화없이 학교급식환경 개선을 위한 어떠한 말도 한낱 허망한 구호일 뿐이다.

/노 현 경(참교육학부모회 인천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