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상 대통령을 4선(選)한 인물은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유일하다.

그는 뉴욕의 명문가 출신으로 하버드대를 나와 해군차관보·부통령후보·뉴욕주지사를 거쳐 1932년11월 대통령에 당선된 후 대공황으로 괴멸된 미국의 경제를 되살리고 침략자인 독일·이태리·일본에 맞서 전쟁을 지휘한 국민적 영웅이었다.

그는 재임기간내내 국민과 언론을 설득시켜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다. 루스벨트가 시도한 국민과의 노변정담(爐邊情談, a fireside talk)은 유명하다. 백악관의 난로옆에서 라디오로 국민들에게 정부의 경제회생노력과 전쟁의 상황을 자세히 진지하게 설명했다.

루스벨크는 역대 대통령들 중에서 기자회견을 가장 많이 한 기록을 세웠다. 여론을 좌우하는 언론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집무실이건 야외·차량·기념회장 등에서 수시로 회견을 해 뉴스를 갈구하는 기자들을 매료시켰다.

언론플레이를 교묘하게 한 것이다. 언론을 통해 자신이 실수나 실정(失政) 등 일말의 흠도없는 뛰어난 지도자, 완전한 대통령으로 국민에게 인식되게 했다. 그런 루스벨트가 1945년4월12일 급서하자 국민들의 충격, 나라걱정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부통령인 트루먼은 루스벨트에 비해 너무나 초라했다. 고향인 미주리주의 촌에서 고교를 나와 농사를 짓고 구멍가게를 했으며 선출직 공무원과 판사일을 하다가 우연한 기회로 연방상원의원에 당선됐고 운좋게 부통령이 된게 전부였다. 루스벨트의 급서로 대통령취임선서를 한 다음날 트루먼은 자신에게 7대비판자내지 적(敵)이 있음을 깨달았다.

국민, 언론, 여소야대, 야당(공화당), 여당(민주당)일부, 고위공직자, 몇몇 각료가 그들이다. 그들은 능력·경험·경륜도 없는 촌뜨기 출신이 거대한 미국을 이끌겠는가라며 언론의 포화(砲火)를 비롯 무시·경시·비협조 자세를 보였다.

트루먼은 침묵속에 중대현안에 관한 자료를 밤을 새워 검토하고 각계 전문가 등의 자문을 받은 뒤 20여일부터 중대결단을 내렸다. 독일과 이태리의 항복, 포스탐회담서 스탈린견제, 원자탄투하, UN창설, 팽창한 정부조직의 축소, 경제회생과 제대군인 취업대책, 트루먼독트린선언, 베를린공수, 나토창설, 한국전파병 등을 결정해 국내외를 놀라게 했다.

그가 가장 싫어한 것은 생색내기 변명및 포퓰리즘이었다. 나중 노벨상을 타게 된 조지 마셜 국무장관의 마셜플랜(유럽부흥계획)도 트루먼이 마셜을 아껴 대신 발표케 한 것이었다. 1953년 1월20일 재선출마를 포기하고 기차편으로 귀향하자 국민과 언론, 정치권 등은 “트루먼이야말로 순수한 영웅이다” “루스벨트보다 더 큰 업적을 남겼다”며 박수를 보냈다. 필자가 루스벨트와 트루먼의 얘기를 새삼 소개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운영및 시국에 관한 자세와 대비하기 위해서다.

지난달말 노 대통령의 KBS회견내용은 많은 걱정을 안겨주었다. 우선 국민을 분노케한 `바다이야기'비리에 대해 뒤늦게 나마 사과한 것은 평가할만하다.

그러나 “경제가 좋아도 민생은 어려울 수가 있다” “부시 대통령은 한미관계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작전권환수문제 지난 정권때 추진된 것이며 야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지말라” “낙하산인사는 내려오게 마련이다”등등은 국민을 어리둥절케 했다.

즉 대통령·청와대·정부는 잘하고 있다며 변명과 억울하다는 자세인데 경제의 경우 전문가들은 “핵심지표가 엉망인데 이렇게도 대통령과 국민의 현실인식이 다를 수가 있는가”라고 비판하고 있다. 대통령의 얘기대로 억울하고 또 별로 큰 문제가 없다면 지지율이 14~15%선으로 하락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노 대통령의 할일이 너무나 많고 시간은 없는데도 취임후 지금까지도 비판에 대해 즉정적(卽情的)이고 알레르기식 반응을 보이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당대에 잘잘못에 관해 신경을 쓰기보다 먼 훗날 역사와 국민의 평가에 맡기고 소처럼 묵묵히, 그리고 진실하고 성실하게 나라를 이끌어 가는 트루먼같은 모습이 그립다.

정말 이땅에서는 불가능한 일일까?

/이 성 춘(언론인·전 고려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