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무더운 여름이었습니다. 정말 괴물같았던 무더위였지만 절기의 변화는 어쩔 수 없는지 요즘은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옷깃을 스칩니다.

선생님 건강하신지요. 매년 스승의 날이 있는 5월에는 업무수첩 달력을 열며 올해는 꼭 선생님을 찾아뵈리라 마음먹지만, 그동안 문안전화 한번 제대로 드리지못해 부끄러운 마음으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선생님을 처음 뵌것이 1979년, 벌써 28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제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선생님께서는 오산고등학교로 전근오셨고 저의 1학년6반 담임을 맡으셨지요. 저와 친구들은 선생님의 짙은 눈썹, 거무스레한 피부, 굵으면서도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농업 과목에 꼭 맞는 시골스러운 모습이라며 낄낄거렸죠. 그러나 선생님은 외모와는 전혀 다르게 `열심히 하면 이룰 수 있다'는 슬로건을 걸고 앞장섰습니다.

교내 합창대회가 생각납니다. 뻑뻑한 남학생의 목소리를 부드럽게 만들어내기 위해 선생님께서는 테너·베이스 목소리를 직접 내시며 늦게까지 연습을 했죠. 그러나 저와 친구들은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합창이 뭐가 중요하냐며 억지춘향으로 연습에 임했습니다. 그럴수록 선생님은 더욱 힘차게 노래를 부르며 채근하셨습니다. 마침내 합창대회에서 우리 반이 1등했을때 선생님의 수고는 생각지 않고 우리들은 기뻐 날뛰었습니다.

그후 교내 환경미화 등 각종 경시대회 및 평가에서 저희 반은 모두 1등 했습니다. 선생님은 모든 분야에서 학생보다 더많은 열정과 노력을 하면서 이끌어 가셨습니다. 많은 제자들이 선생님의 그런 모습과 철학을 기억하면서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그때는 선생님의 깊은 뜻도 모르고 사고도 여러번 쳤지요.

선생님 기억나세요? 아마 1학년 가을체육대회였을 겁니다. 분위기가 한참 들뜰쯤 몇몇 학생이 몰래 막걸리를 사다 마셨지요. 그런데 한 놈이 취해 다른 반 선생님한테 들통이 나 선생님까지 알게 됐지요. 그날 체육대회도 저희 반이 우승을 했습니다. 그러나 우승의 기쁨은 우리의 잘못을 대신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의 큰 꾸지람은 저에게 평생 잊지못할 또 하나의 추억이 되었지요. 그렇게 1학년이 지나고 2학년에 올라갔습니다. 저와 친구들은 2학년때는 선생님이 제발 담임을 맡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열심히 하자는 선생님의 도전적인 스타일이 그때는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우리 반 그 많은 학생중에서 저와 다른 친구 둘만 선생님 반으로 배정됐지요.

이제와 생각하니 그것은 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연이었습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저에게 선생님의 학창시절을 얘기하면서 용기를 주셨지요. 그 용기에 힘입어 사회인으로, 가장으로 열심히 생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 세월은 정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참 빨리 흘러갑니다. 제 큰 아이가 올해 고등학교 1학년이 됐습니다. 저희 아이도 28년전 제가 선생님께 속 썩인 것처럼 철없이 선생님 속 썩이고, 말썽피우고, 하라는 공부 안하고 놀기만 좋아하겠지요.

2년전 선생님을 뵈었을 때 머리가 하얗게 변한 모습을 봤습니다. 옛날 저와 제 아이 같은 학생들이 속을 썩이고, 언제나 한결같이 제자 잘되기를 바라는 걱정에 머리가 세신 것 같아 우울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선생님, 28년전 그때가 그립습니다. 항상 노력하시는 모습, 가슴 깊이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선생님, 35년의 교직생활을 접고 퇴임하신다는 소식 들었습니다. 퇴임하신 후 더 멋진 새로운 삶을 이루시길 바랍니다. 세월이 흘러 저와 제자들이 직장에서 퇴임하면 선생님의 아름다운 제2의 인생을 본받아 또 열심히 살아갈 것입니다. 선생님, 언제나 건강하시길 기원드립니다.

/김 현 광(장애인복지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