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성의 바로미터인 세계 유수 영화제  수상작들이 극장가에서 홀대받고 있다. 영화제가 끝나면 신문광고에 '수상작'이라는  문구까지 달아 줄줄이 개봉되던 예전과는 달리 최근 들어 영화제  수상작들을  극장에서 만나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언제부턴가 영화제 수상작들은 "재미없다" "어렵다"는 편견이 관객의 머리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 대중성을 일정 정도 인정받고 있는 미국 아카데미 수상작들은 아직까지는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칸ㆍ베를린ㆍ베니스 등  세계  3대 영화제를 비롯한 경쟁영화제 수상작들은 한마디로 찬밥 신세다.

    ◇칸ㆍ베를린ㆍ베니스 올해 수상작 중 3편 개봉
    올 하반기에 개봉하는 칸ㆍ베를린ㆍ베니스 영화제의 올해 수상작은 '이사벨라(Isabella)' '귀향(Volver)'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 등 3편이다.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ㆍ각본상 수상작인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귀향'이 21일 개봉되고, 28일에는 베를린 영화제 음악상 수상작인 홍콩 팡호청 감독의 '이사벨라'가 관객과 만난다. 11월 초에는 켄 로치 감독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  개봉될 예정. 이 작품은 올해 칸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그러나 이들 작품은 영화제 수상작이기 때문에 개봉되는 것이 아니다. '귀향'은 제작 단계부터 수입이 확정됐고,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영화가  완성된  직후에 수입됐다. '이사벨라'만이 수상 직후에 영화사 CNS엔터테인먼트가 산 작품.  '귀향'과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모두 감독의 인지도 때문에 국내 개봉이 추진되는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수입한 동숭아트센터 김지예 영상사업팀장은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
올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타 홍보에는 약간의 도움이 되겠지만 켄 로치  감독의 작품이기 때문에 산 것이지 구입단계부터 영화제 수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면서 "1990년대 중반부터 말까지 예술영화 붐이 일었던 시기에나 영화제  수상작이라는 이름이 '약발'을 받았지 지금은 영화제 수상작이 영화 구입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카데미는 도움되지만, 베니스는 오히려 독(毒)?
    3월 개봉한 '브로크백 마운틴(Brokeback Mountain)'은 지난해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이지만 이 문구가 홍보에서는 부각되지 않았다. 영화사 백두대간은 리안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과 골든글로브상과 아카데미상 수상  경력만을  내세웠을 뿐이다.

    베니스 영화제 수상작이란 꼬리표가 흥행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 당시 백두대간은 영화를 소개하면서 '예술영화'라는 타이틀도 꼭 빼달라고 주문했다.

    이달 말 개봉하는 '귀향' 역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ㆍ각본상 수상작이라는  점을 포스터에는 넣었지만 이를 강조하지는 않는다. 세계적인 거장 알모도바르의 작품이라는 점과 톰 크루즈의 연인이었던 페넬로페 크루즈 주연이라는 점만을 강조하고 있다. 감독과 배우만이 영화 홍보에 중요 포인트가 된 셈.

    스폰지 배급팀 송유진 대리는 "칸 영화제 수상 결과를 포스터에 넣기는 했지만 이것이 흥행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스폰지는 개봉 시기를 내년 초로 잡고 있는 올해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바벨(Babel)'의 홍보에는 '2006년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이라는 문구를 빼는 것을 고려 중이다. 이 영화에는 세계적인 스타 브래드 피트와 '쉘 위 댄스'로 유명한 일본배우 야쿠쇼 고지가 출연했기 때문.

    송 대리는 "개봉 시기가 남아 있어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영화제 수상작이란 문구가 '재미없다' '어렵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우려가 있어 이를 빼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털어놓았다.

    ◇국내 영화제는 해외 영화제 수상작 흥행 시험무대
    3명의 영국인 무슬림이 미국의 쿠바  관타나모 기지 테러용의자 감옥에 2년 간 수감됐다 풀려난 실화를 담은 영화 '관타나모로 가는 길(The Road to  Guantanamo)'은 올해 베를린 영화제 감독상인 은곰상 수상작으로 영국의 거장  마이클  윈터버텀 감독의 작품. 영화 외적으로도 국제적인 이슈로 부각되면서 관심을 모았던 영화다.

    이 영화는 메가박스가 10월 주최하는 유럽영화제에서 소개된다. 극장 개봉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이 영화제 상영작에는 올해 베를린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작 '레퀴엠(Requiem)'도 포함돼 있다.

    8일부터 서울 종로 스폰지하우스(시네코아)에서 진행 중인 서울영화제에서도 지난해 베니스 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수상작인 아벨 페라라 감독의   '마리아(Mary)'와 같은 해 칸 영화제 황금카메라상 수상작 '버려진 땅(The Forsaken  Land)'  등이 상영작 목록에 올라 있다.

    서울영화제 정은용 홍보팀장은 "예전 같으면 이미 개봉됐을 영화들조차  영화제에서 잠깐 상영된 뒤 사라지는 경우도 허다하다"면서 "영화사 측에서 영화제를 흥행 가능성을 타진하는 무대로 활용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영화제 측에서도 초청작 리스트를 짤 때 흥행성도 꼭 따져본다"면서 "유명감독이나 유명배우가 나온다고 해도 대중성을 갖추지 못했으면 빼는 추세"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