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통 더위의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 벌써 가을이 성큼 찾아왔다. 오늘 아침 동네 책방에도 잽싸게 쪽지 하나가 새로 나붙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 사실 그것 만큼 진부하고 상투적인 문구도 없지 않나 싶다. 문득 `독서주간'이라고 쓴 하얀리본이 생각난다. 60~70년대 중고등학생 시절, 해마다 이쯤되면 누구건 어김없이 가슴에 달고 다녀야 했던 그 작고 하얀 리본 말이다.

흰 무명천 혹은 비닐로 만든 그 리본의 표어도 일년내내 참 다양했다. 산불조심, 반공방첩, 나무를 심자, 스승의 은혜, 상기하자 6·25 등등. 돌이켜보면 독재시대의 군사문화가 양산해낸 을씨년스런 풍경 가운데 하나였다. 전국의 수백만 어린학생들의 교복가슴팍을 일제히 살아움직이는 정부홍보판으로 활용한 셈이었으니까. 그 리본은 오래 전 사라졌지만, 표어는 아직 살아남았구나. 동네책방의 쪽지를 보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쨌건 가을은 책읽기 좋은 계절이다. 한때 생활기록부나 이력서의 `취미'란에 독서라고 적어 넣는 게 유행이었다. 그러면 뭔가 지적이고 고상해뵈는 것 같기도 했을 터이다. 너나없이 배고프고 가난한 시절이니, 책 자체도 귀했고 또 즐겨 책을 사서 읽을 만큼 여유있는 처지도 흔치 않았다. 책도둑은 도둑이 아니라는 말이 오죽하면 나왔겠는가.

그러나 이 풍요와 과잉소비의 시대에도 한국인은 여전히, 아니 전보다 더 책을 읽지 않는 것 같다. 책읽기는 취미가 아니다. 육체건강을 위해 하루 세끼 밥을 먹어야 하듯, 독서는 정신과 내면의 건강을 위한 필수적인 일상의 식사다. 너도나도 웰빙이다 성형이다 명품이다, 오로지 육신을 위한 겉치장과 과시욕에 돈과 시간과 정력을 쏟아부을 뿐, 시간이 아무리 남아 돌아도 좀처럼 책은 읽지 않는다. 당연히 지금 한국인은 신체적으로는 영양과잉, 정신과 내면은 심각한 영양결핍상태에 빠져 있는지도 모른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 독서시간은 OECD국가중 최하위에 속한다. 국민절반이상이 각종 잡지류를 포함 한달평균 책 한권도 읽지 않는다. 책읽는 시간보다 개인당 이동전화 통화사용시간이 훨씬 더 많다. 우리나라 공공도서관 1인당 장서수는 미국의 4분의1, 일본의 3분의1 수준이다. 전국의 도서관·기록보존소·독서실까지 다 합친 수가 4천900여 개. 반면에 요즘 한참 시끄러운 `바다이야기' 등 사행성도박업체 수는 무려 3배가 넘는 1만5천26곳이란다. 시장규모는 7조원, 우리나라 1년예산의 10% 수준이고, 도박에 중독된 인구도 300만명을 넘어섰다잖는가.

책을 읽지 않게 된 원인으로는 인터넷의 확산과 각종 전자정보매체의 영향도 있다. 그러나 그것들을 통해 얻는 단순한 지식정보와 책을 통해 얻는 것은 질적으로 다르다. 책은 단순한 지식과 정보만이 아니라, 보다 깊고 폭넓은 사고와 사유를 경험하게 한다. 책은 지식의 원천이며 문명의 자산이다. 도서관은 인류문명의 산물이자 역사이고, 인간정신의 집대성이다. 독서가 우리의 정신과 내면엔 물과 공기처럼 소중한 이유도 그래서다.

우리의 열악한 도서관 실태도 거기에 한 몫 더한다. 도서관수는 물론이고 장서부족·인력부족·예산부족은 말할 나위도 없다. 무엇보다 도서관을 예산만 소비하는 비생산기관 정도로 취급해 온 정부당국의 한심한 인식도 문제이고, 도서관을 순전히 시험준비를 위한 열람실 정도로만 여기는 이용자의 사고방식도 딱하다.

교육열이라면 지구상에서 첫손가락 꼽힐만한 한국국민들의 독서수준이 그 정도로 바닥이라니! 얼핏 수수께끼 같아 뵈지만, 그게 우리의 적나라한 현주소다. 출판서점가의 불황은 이미 골이 깊을대로 깊었다. 인문사회과학 서적류는 이미 절명상태고, 문학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입시·구직·시험을 위한 각종 학습서가 시장을 점령하고 있는 현실에서, 정신과 내면을 살찌울 진정한 책읽기의 의미는 점점 잊혀져 가고 있다. 그나마 아동물서적은 항상 호황이라고 한다. 대학논술대비는 유치원때부터라던가. 뜨거운 교육열이야 어쩌겠는가. 다만 아이들에겐 아낌없이 책을 사주며 독서를 강요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한 권도 읽지않는 딱한 부모들이 너무 많다는 얘기다.

/임 철 우(소설가·한신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