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 백두산 천지로 오르는 터널식 계단이 장백폭포 옆으로 완공돼 제자들과 함께 답사에 나섰다. 천지를 향하는 안전한 계단이 생기니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게 됐다. 평소 민족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던 제자들과 민족의 발원성지를 방문한다는 설렘으로 천지를 향했다. 그곳에서 민족성조께 천제도 올리고 제주도 삼다수와 천지물의 합수도 하며 민족통일의 염원을 빌어보자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순진한 생각은 천지에 오르는 순간 무참히 깨졌다. 과거에는 천지에 올라도 거의 사람이 없거나 있어도 우리 민족뿐 이었는데 계단 덕에 엄청난 인파가 올라있었다.
더욱이 우리 민족보다는 중국인이 더 많은 것 같았다. 사방에서 들리는 요란한 그들의 떠벌림에 천지는 완벽한 중국내 관광지가 됐다. 붉은 글씨 비석과 황당한 괴물상을 놓고 사진찍는 장사를 하고 사방에 비닐봉지가 뒹굴고 천지는 도저히 민족성지라는 경외감을 가질 수 없게 만들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천지를 지키는 중국군들과 붉은 완장을 찬 감시원들의 차가운 눈초리였다. 이들은 한국인이 천지에서 행여 무슨 민족의식이라도 치르지는 않는지 감시하고 있었다. 천제는 고사하고 애국가도 부를 수 없고 대한민국을 외쳐 보지도 못하게 했다. 이렇게 그들은 이미 백두산과 우리 민족의 인연을 철저히 끊으려 하고 있었다.
중국의 동북공정을 통한 역사왜곡이 우리의 자존심을 무참히 짓밟고 있다. 아무런 문헌적 근거도 없음에도 그들은 고조선부터 부여·고구려·발해를 저들의 역사에 편입시키고 심지어 한강 유역까지를 자신들의 영토로 주장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사(正史)인 신당서와 구당서 등에 고구려, 발해를 동이족의 역사라고 한 기록에도 눈감고 있다. 심지어 2004년 역사연구는 학술영역인 만큼 연구자들의 학술적 토론으로 해결키로 한 양국 정부의 구두합의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 것이다.
중국 역사침공의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 56개의 민족으로 구성된 중국은 언제든지 민족분열과 독립운동의 화약을 안고 있는 셈이다. 이미 소련이 붕괴와 함께 15개 민족으로 분열된 모습을 학습했기에 국내 소수민족의 행태는 늘 중국의 국가적 관심이 되고 있다. 어떻게 해서든 한족 중심의 지배체제를 견고히 하고 향후 영토분쟁에 대비하기 위해 중국정부는 1차적으로 역사왜곡을 통한 소수민족 동화와 역사침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를 향한 동북공정은 분명 내적으로는 중국내 조선족들의 이반을 막고 만주에 대한 지배권 강화 그리고 북한 붕괴시 영유권 주장을 위한 포석임에 틀림없다. 주목되는 것은 간도협약이다. 중국이 일본과 체결한 1909년의 간도협약은 당사자인 대한제국의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다.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한 일본이 만주지역 철도 부설권을 얻는 조건으로 우리의 국경선을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확정했다. 이미 수 많은 조선인이 넘어가 거주하며 개척하고 또 조선 정부는 간도관리사를 파견해 다스리기까지 한 지역을.
1882년 청나라와 국경협상을 벌이던 이중하 감계사는 청이 강압적으로 압록강~두만강 국경을 확정지으려 하자 “내 목을 자를지언정 한 치의 땅도 내놓을 수 없다”라며 버텨 간도를 지켜냈다. 역사는 별로 주목하지는 않았지만 국가를 대표한 한 관리의 당당함 덕에 우리는 아직도 간도지역을 분쟁지역으로 삼을 수 있게 됐으니 얼마나 감사한 선열인가.
동북공정에 온 국민이 분노만 할 것인가. 우선 간도협약 무효선언이라도 해야 한다. 국제관례상 100년이 지나도록 이의제기가 없으면 인정한 것으로 간주한다. 간도협약 100년은 이제 4년 남았다. 남북이 시급히 합의해 공동으로 국제사법재판소로 달려가야 한다. 언제까지 이렇게 당하기만 할 것인가. 천지에서 천제를 못지낸 우리는 차일봉에 올랐다. 비바람 속에 좌우로 천지와 간도지역이 펼쳐졌다. 뜨거운 눈물의 제를 올렸다. 우리도 당당한 국가가 될 수 있게 해 달라고.
/임 형 진(경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