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해야 하지만 그에 대한 책임도 함께 져야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사건을 묘사한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은 한국영화사에 중요한 기준을 남기게 됐다. 영화가 특정한 소재를 다룰때 어디까지 가능한지, 그렇게 만든 영화를 상영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지, 의도적이든 아니든 그 영화로 인해 직·간접의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기준이 될만한 선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상영금지 여부를 둘러싸고 진행된 소송과정에서 해당 재판부는 영화는 원본대로 상영하되, 당사자의 명예를 훼손한 부분에 대해서는 배상을 해야한다고 선고했다. 표현의 자유와 책임을 동시에 요구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때 그 사람들'은 제작과정에서부터 영화계 안팎의 눈길을 모았다. 소재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시해사건을 직접 다루는 첫 번째 영화였는데다 생존인물들이 여러명 남아있고, 이런저런 이유로 희생된 인물들의 유족도 당사자 입장에 있기 때문이었다. 유족측에서는 심각하게 고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영화상영 중지와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영화사측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동이라며 원형대로 영화를 상영할 수 있어야 한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영화의 내용이 특정개인이나 집단의 명예를 훼손한다는 시비에 말린 경우는 여러번 있었다. `비구니' `성철' 같은 영화들은 불교계의 반대에 부딪쳐 제작과정에서 중지된 경우이고, 시내버스 안내원들의 실태를 그린 `도시로 간 처녀'는 상영도중 간판을 내린 경우였다.
`여고괴담'은 변태적인 교사를 등장시켰다가 한국교원총연합회의 반발을 불러왔고, `공동경비구역JSA'는 휴전선 공동경비구역내에 근무하는 군인들이 남북한 경계를 비밀스럽게 오간다는 묘사가 사실을 왜곡시켰다며 JSA전우회 회원들의 비난에 직면했다. `실미도'는 인천 연안 실미도에서 비밀리에 북한침투훈련을 받았던 `실미도 부대'대원들과 그 유족들이 영화사를 상대로 상영중지를 요구하는 사태의 빌미가 됐다.
해방과 6·25전쟁에 이르는 시기를 배경으로 대한민국 건국과정을 다룬 `서울 1945'라는 TV드라마 또한 이승만 전 대통령, 장택상 전 수도청장의 유족들이 사실 왜곡으로 고인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검찰에 고발하거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논란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명확한 결론을 내린 경우는 없었고, 자유와 책임간의 균형문제도 각자의 입장에 따라 엇갈렸다. 제작자 입장에서는 논란을 무시하고 제작이나 상영을 강행해봐야 유리할 게 없다고 판단해 적당히 협상하거나 아예 포기하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잦았고, 문제를 제기하는 당사자들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언제 끝날지 모르는 소송을 시작하기가 쉽지 않았다. 소송을 시작하더라도 반론을 제기하는 주체가 당사자가 아니거나 대표성이 없다는 이유로 기각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번 판결이 중요하게 보이는 이유는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우세를 단정한 것이 아니라 영화를 만든 쪽이나 피해를 받았다는 측을 모두 보호하며 자유와 책임을 동시에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명확히 했기 때문이다. 영화사는 온전한 모습으로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피해 당사자에게는 적절한 수준의 배상을 해 영화가 특정 인물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사실을 인정받음으로써 보상을 받은 것이다. 괜한 논란을 피하겠다며 유야무야하지 않은 채 끝까지 시시비비를 법리적으로 계속한 제작자나 박 전 대통령의 유족측 모두 대단한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상급심에서 최종적으로 어떤 결론으로 마무리될 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번 결정만으로도 의미있는 기준이 될만하다. 영화제작자나 감독 입장에서는 원형대로 상영은 하되 배상하라는 결정이 불만스럽고, 유족측에서는 명예훼손을 인정하면서도 왜 그대로 상영을 하도록 두느냐며 아쉬워 할 수 있지만 양측 모두를 승자로 만들었다고 하기에 충분하다. `그때 그 사람들'은 소란스런 논란을 의미 있게 만든 것이다.
/조 희 문(상명대 교수·바른사회문화포럼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