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들이 충분한 검토없이 경쟁적으로 외국어마을 조성사업에 뛰어들고 있어 중복투자에 따른 예산낭비 등 부작용이 우려되고 있다.
특히 각 지자체장들이 지난 5.31 지방선거 과정에서 표를 의식해 관련 공약을 내걸었기 때문에 외국어마을 조성 붐은 앞으로도 더욱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나아가 일선 시.군.구까지 지역주민의 요구, 자치단체장의 선거공약 등을 이유로 앞다퉈 외국어마을 설립사업에 나서고 있어 현재 외국어마을 조성 계획을 발표했거나 검토중인 광역 및 기초자치단체는 전국적으로 30여곳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인천의 경우 올해 들어 인천시와 서구가 각각 영어마을을 개원한데 이어 나머지 9개 구.군 가운데 5곳이 외국어마을을 만들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섬 지역인 강화, 옹진군을 빼면 인천시 대부분의 구가 외국어마을 조성에 나선 것이다.
남구의 경우 오는 2008년까지 총 8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영어마을을 조성키로 하고 시비 보조금 56억원을 요청해 놓은 상태다.
연수구는 영어, 중국어, 일어 등을 가르치는 총 사업비 300억원 규모의 외국어마을 설립계획을 추진중이며, 계양구와 부평구도 각각 영어마을 조성을 서두르고 있다.
차이나타운이 위치해 있는 중구의 경우 구청장 공약사항으로 중국어마을 조성사업을 준비하고 있으며, 인천경제자유구역청도 인천국제공항 부근에 대규모 중국어마을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들 계획이 모두 실현되면 인천에만 무려 8개의 외국어마을이 들어서게 된다.
'영어마을 열풍'의 진원지인 경기도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현재 경기도는 안산과 파주에 영어마을 캠프를 운영 중이며 양평에 세번째 영어마을을 조성하기 위해 공사를 하고 있다.
경기도내 기초자치단체들도 잇따라 외국어마을 조성사업에 뛰어들 채비를 갖추고 있다.
화성시는 2010년 개원을 목표로 300억원들 들어 영어, 중국어권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외국어마을을 세울 계획이며, 용인시도 화성시와 유사한 내용의 외국어마을을 조성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광주, 성남, 수원, 의정부, 이천시 등도 현재 영어마을을 운영하고 있거나 설립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 처럼 지자체들이 수요조사와 재원조달 방안 등 구체적인 사전검토 작업 없이 경쟁적으로 외국어마을을 조성하려는데 대해 중복투자와 예산낭비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대두되고 있다.
최소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외국어마을을 조성하기 위해선 철저한 수요예측 및 투자효과 분석과 함께 재원조달 방안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기초자치단체들이 광역단체와 사전 협의나 조정을 거치지 않고 관련 계획을 발표한 뒤 조성 사업비나 운영비 지원을 광역자치단체에 요청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는 비판론이 나오고 있다.
더욱이 인구 2만~3만명인 군 단위에서까지 영어마을을 만들려는 것은 효율성 측면에서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인천시 관계자는 "기초단체들이 충분한 사업타당성 검토나 부지 마련 방안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조건 예산지원만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예산낭비가 우려되는 만큼 외국어마을 사업에 시비보조금을 지원하는 것을 엄격히 제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외국어마을의 순기능을 인정하면서도 가뜩이나 어려운 지방재정 사정 등을 감안할 때 무분별하게 외국어마을을 설립하기보단 다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인하대 영어교육과 이현우 교수는 "외국어마을이 경제사정 등으로 외국을 직접 체험하기 어려운 학생들에게 외국어 학습동기를 부여하는 효과가 있지만 설립과 운영에 많은 예산이 투입된다는 점에서 수요와 효과에 대한 면밀한 검증 절차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는 "국내 교육여건상 지자체들이 외국어마을에 중복투자하기 보다는 부족한 원어민 교사의 채용을 늘리거나 영어교사들에 대한 연수를 확대하는 것이 효과적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