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우리나라는 냉전과 분단 상황으로 인해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분단국 외교관이 사무총장이 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게 통념이었던 것.
그러나 소련 붕괴로 1990년대에 양극 체제가 무너지면서 우리나라의 국제 정치적인 위상이 근본적으로 바뀌면서 이같은 통념은 변하기 시작했다.
탈냉전 이후 국내 인사의 유엔 진출이 종전과 비교해 볼때 눈에 띄게 늘었으며 한승수 전 외교부 장관이 2001∼2002년 유엔총회 의장을 겸임(가입 이후 최초로 총회의 제1위원회-국제안보·군축위원회 의장직 수임)하기도 했다.
한국은 유엔내에서 미국과 일본, 일부 유럽국가 등 소수의 부국과 개발도상국을 포함한 다수의 빈국간의 중간에 위치한 중견 국가로서 이견조정을 하는데 유리하고 패권주의나 일방주의의 우려가 없는 공정한 조정자로서 역할이 가능하다는게 이들의 시각이다.
특히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북간 화해·협력이 현실화하고 작년 9월 `9·19 공동성명' 채택으로 한반도 비핵화에 성큼 다가선 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200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유엔 분담금 11위, 유엔 평화유지활동(PKO) 10위에 랭크돼 있으며 유엔의 일원으로서 동티모르 독립과 이라크 재건 지원을 위해 대규모 파병과 무상 원조를 제공하고 있다.
이런 활동에 힘입어 일부 국가들이 `차기 사무총장은 아시아권'이라고 암묵적으로 합의를 본 것은 널리 알려져있는 사실.
반기문 장관의 출마가 당선으로 이어질 경우 우선 한국의 국제적 위상과 국가 브랜드가 크게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유엔의 수장을 배출한 저력을 가진 국가로, 국제사회의 안보와 공동 번영에 적극 기여하는 평화애호국가로서 정체성이 전세계에 알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외교 역량 강화가 기대된다. 특정 국가에 편중됐던 외교의 지평이 자연스럽게 다자주의로 그 영역을 넓혀갈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현재 UN 상임이사국인 중국 그리고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상임이사국 진출을 노리는 일본과 더불어 리더 국가로서 그 지위가 굳혀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적 여론의 지원을 받아 북한의 변화를 주도해갈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될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전쟁과 분단, 빈곤의 고통을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국제문제를 주도적으로 관리하는 세계 역사의 주체로 발돋움하게 된 것에 대한 국민적 자긍심과 자신감이 높아질 것임은 새삼 거론할 필요조차 없어 보인다.
그러나 반 장관이 우리나라에 외교적으로 유리하게 움직여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UN 사무총장직은 출신 국가의 국익을 떠나 세계 평화를 위해 효과적으로 공헌해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우리나라가 유엔 분담금 납부를 지연하고 있고 빈국 지원을 위한 ODA(공공 개발원조)에 인색한 점이 불리한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을 받아왔던 만큼 앞으로 이 부분은 우리 외교가 당면한 가장 시급한 과제 중 하나로 떠오르게 됐다. 사무총장을 배출한 세계 11위의 경제 대국이 유엔의 가장 큰 사업인 ODA를 소홀히 한다는 것은 반 장관을 지지한 우방국들을 비롯한 세계 각국들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제사회는 현재 국가별로 ODA 기금을 GNI(국내총수입)의 0.7%까지 확대할 것을 권고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현재 0.06%에 불과하며 작년말 현재 1억3천만달러의 유엔 분담금을 미납한 상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