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평택시 팽성읍 대사1리와 경기도의회 입법정책관실은 자매결연을 맺었다. 도농상생의 정신을 몸소 실천하자는 취지였다.
결연식이 끝나자 주민들은 버섯재배사로 쓰였던 건물로 일행을 안내했다. 거기엔 갖가지 음식이 가득 진열돼 있었다. 아마도 출장뷔페를 주문해서 차려진 음식같아 보였다. 도시에서의 결혼식 피로연장 같은 분위기였다. 사실 기대했던 점심식사는 농촌 냄새가 물씬 풍기는 가마솥 밥과 구수한 된장국에 걸걸한 막걸리였다.
기대감과는 달리 뷔페식 식단을 대하고 보니 농촌의 풍경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왜 뷔페식 점심상이 차려졌는가에 대해 곧 알게 됐다. 40대의 부녀회장이 이리저리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식사를 주관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대사1리 마을에서 가장 젊은 여성인 듯 보였다. 식사하는 주민을 둘러보니 거의가 할아버지·할머니였다. `그렇구나! 농촌에 젊은 여성들이 없구나. 그러니 밥 짓고 반찬 만들 여성이 어디 있겠는가'.
식사를 마치고 우리 일행은 도와드릴 일이 있느냐고 이장께 물었다.
“이 마을엔 논농사밖에 없습니다. 추수할 때도 덜 됐고, 벼수확은 기계로 하니 지금은 마땅히 맡겨드릴 만한 일거리가 없습니다. 오늘은 뜻깊은 자매결연 날이니 마을이나 구경하시고 가십시오. 도움받을 일이 생기면 따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래도 일손 도우러 온 것인데 그럴 수야 있습니까?” 우리는 마을 남쪽의 들판으로 나갔다. 혹여 들판에 피사리할 일거리라도 있나 하고 살펴봤으나 황금빛 벼이삭이 출렁대는 들판에는 피사리도 말끔하게 마쳐져 있었다. 노인만이 농사짓는 처지임에도 정말 부지런한 주민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었다.
마을 어른들이 만류했으나 그대로 돌아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논 가장자리를 돌며 쓰레기를 줍는 등 사소하지만 노인 혼자하기 힘든 허드렛일을 자처해 땀을 흘렸다. 일을 마치고 이장과 마을 주민들의 환송을 받으며 타고 갔던 버스에 올랐다. 마을회관 앞에서 마을버스를 기다리던 할머니 세분이 다가 오셨다.
“마을버스가 안 들어와서 그런데 평택시내까지 좀 태워다 줄 수 있겠소?” “네, 그렇게 하시지요. 어디까지 가시는지요?” “병원에 가는데 마을버스를 아무리 기다려도 안 들어와. 버스가 걸러 먹나봐.”
할머니들은 버스속에서 몇번이나 고맙다고 하셨다. 대사1리에는 평택시내로부터 마을버스가 하루 두번씩 운행되는데 가끔 결행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세할머니 모두 관절염으로 고생하며 1주일에 두번씩 평택시내의 병원에 통원치료를 하신다는 것이었다. 평생을 밭고랑에 쪼그리고 앉아서 풀뽑고 김매며 다리를 펴보지 못했으니 관절염이 됐을 것이었다. 자식 공부시켜 도회지로 내보내고, 이제 늙고 병든 분들만 고향 농촌을 지키고 있으니 우리나라의 농업분야에 대대적인 개선책이 시급함을 절감했다.
한편, 오세원 이장을 비롯한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하소연했다. 팽성읍 대사리는 충청남도 아산시 둔포면과 연접한 도계(道界)마을이다. 이 마을 주민 대부분 둔포면에 경작지를 소유하고 있다. 살림집은 경기도 땅에 있으나 농사는 충청도 땅에서 짓고 있으니 양쪽으로부터 행정·재정적 지원을 제대로 받을 수 없다는 푸념이다. 예를 들어 농로확장이나 포장사업, 재해발생시 복구작업지원이나 보상 등에 있어서는 양쪽의 행정기관이나 단체들이 미온적으로 대처해 다른 마을 주민보다 심한 소외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다. 경기도와 충청도의 농사정책이 상이해 못자리용 상토나 비료지원 등에서도 차별의식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도계마을 주민들은 크고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경기도와 충청남도가 진지하게 협의해 도계연접 양측 주민 모두에게 동일한 수혜가 베풀어지기를 기대했다.
/조 규 윤(경기도의회 입법정책담당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