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富者)는 많아도 이웃을 위해 베푸는 부자는 많지 않다. 얼핏 가진 것이 많으면 그만큼 베풀기도 쉬울듯 싶지만, 되레 더 어려운 모양이다. 오죽하면 “벼 아흔아홉섬 가진 사람이 한섬밖에 없는 이웃집 재산을 탐낸다”는 말도 있다. 간혹 재산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는 이가 있으면 두고 두고 칭송 받는 것도 다 그래서일 것이다. 그런 때문인지 몰라도 많은 이들은 그같은 일을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 베풀기는 커녕 국가에 내는 세금이나 꼬박 꼬박 잘 내주었으면 하는 것이 대부분의 바람이다. 하지만 웬만한 부자치고 탈세 감세에 열올리지 않는 부자도 꽤 드문 게 현실이다.

고소득 전문직사업자 100명 중 13명은 연소득 2천400만원 미만의 극빈층으로 세무당국에 신고됐다 한다. 지난해 변리사 연평균 소득은 5억4천만원, 변호사는 3억2천만원, 회계사 등은 2억2천만원이었다. 그러나 이들 중 13.5%나 연소득 2천400만원 미만으로 신고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중에도 형편이 어려운 경우가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글쎄 얼마나 믿어야 좋을지 모르겠다. 그런가 하면 100만달러 이상 금융자산을 가진 소위 백만장자 8만6천여명 중, 정작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는 2만3천여명에 불과하다 한다. 갖가지 ‘세(稅)테크’방법을 동원, 절세 재미를 톡톡히 누린다는 것이다. 그토록 강조해온 공평과세는 결국 공염불에 그치는 게 아닌가 싶다.

“우리는 빈부격차가 갈수록 커지는 세상에 살고 있고, 이는 사회 건강에 해롭다. 상속세 폐지는 이를 더욱 부채질할 것이다.” 몇년째 상속세 폐지 반대운동을 벌이는 언론재벌 테드 터너 등 미국의 유명갑부들이 부르짖는 말이다. 그들은 또 이렇게 외친다. “세금은 죽음처럼 유쾌하지 못한 현실이지만, 세금이나 죽음을 폐지할 수는 없다”고. 그들이 신기한 것인지, 우리네 갑부들이 신기한 것인지 모르겠다.

/박 건 영(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