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말 우리 부부의 막내가 된 동영이의 입양 절차가 지난 6월 마무리됐다. 우리 부부는 동영이가 우리 아들임이 법적으로 인정됐다는 사실에 가슴이 설렜다. 그런데 한 가지 걱정거리가 생겼다. 호적등본을 떼어보니 기아발견(棄兒發見), 기아발견 조서 제출일, 기아발견 조서 작성자 등의 표현이 기재돼 있었다.

본인은 물론 누구나 서류를 보면 동영이가 출생후 부모에게서 버림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돼있다. 호적은 중·고등학교, 대학교에 입학하거나 취업시 갖춰 제출할 서류다. 그런데 물론 그 사실은 미리 알고 있지만 `발견된 기아'라는 내용이 기재된 것을 보며 어떤 기분이 될까? 그리고 이를 제출받는 관계자들의 반응이 어떨까?

누구나 공개적으로 알리고 싶지않은 비밀이 있다. 객관적으로 보면 전혀 부끄러워하거나 감출 일이 아님에도 말이다. 어떤 사람은 심장수술 한 흉터를 남에게 보이고 싶지않아 평생 수영을 하지않은 사람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심리 치료를 받고 이를 극복했다고는 하나 수십년간 그를 사로잡은 정신적 고통은 말로 형언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은 일이었지만 필자도 초등학교 신체검사시 색약인 것이 판명된 후 이 사실이 남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한 일이 있었다. 그 당시 선생님 두 분이 검사표를 읽지 못해 쩔쩔매는 필자를 가리키면서 `아빠 엄마 중 한명이 색맹인 모양이지? 색맹은 유전이 된다고 하는데'라고 한 것이 계기가 된 것 같다.

비정상인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성인이 돼서도 신체검사 때마다 색맹검사를 하는데 대해 반감을 가지고, 치료도 안되는 것을 왜 쓸데없이 검사하는가하여 검사를 회피한 일이 있다. 이와 같은 약점 또는 수치감(사실은 아닌데도 말이다)을 극복하는데 30여년이 걸렸다.

기아라는 사실은 이러한 하찮은 수술 흔적, 색약이라는 사실과 비교할 수 없이 큰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동영이가 성장하여 받을 충격을 생각해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동영이가 듣는 앞에서 입양했다고 말을 한다. 그리고 제가 자라던 고아원을 잊지 않도록 때때로 상기시킨다. 미리미리 알려주어 심리적인 충격을 최소화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네가 부모로 부터 버림 받았다'라는 이야기만은 하지 않는다. 철이 들어 한번이면 충분하고 그 한번의 충격과 고통에 그쳤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축복받아야 할 자기의 출생이 저를 태어나게 해 준 어머니, 아버지에게서 버림을 받았다니 그 사실 자체를 인정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된다. 우리 부부는 동영이가 그 상처를 잘 이겨내고 훌륭하고 건전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것을 확신한다.

아픔을 이겨낸다해도 그것을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살아가며 수시로 접할 행정서류가 그 기억을 상기시켜주다니 당하는 개인에게 안겨줄 아픔을 헤아려야 한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알리고 싶지않은 출생의 비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픈 상처를 안고있는 이들에게 너무나 무감각하다. 해외로 입양된 고아들을 지칭해 `고아의 해외수출'이라고 한다. 그렇게 말하는 분들에게 묻고 싶다. 그러면 국내 가정에 입양된 아이들은 `고아의 국내거래'인가라고.

십만명 이상의 고아가 국내외로 입양돼 양육됐다. 보통 가정에서 자란 이와 같이 훌륭하게 사회 발전을 위해 공헌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주위 사람들을 어렵게 하는 이도 있다. 이들이 그러한 신문 기사를 읽고 어떠한 고통을 겪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호적등본에의 기록 내용도 마찬가지다. 굳이 `기아'라는 표현이 들어가야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호적에 언제, 누구에게 입양됐다는 사실만 기록하면 무슨 문제가 있는가. 호주제도가 철폐되는 몇년후에는 호적등초본이라는 서류 제출이 필요없다면 다행이겠지만.

/신 언 항(연세대 보건대학원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