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때 읽은 한 괴기만화가 생각난다. 하도 오래돼 제목이나 저자 이름은 잊었지만,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은 것으로 기억된다. ‘교통사고로 뇌를 크게 다친 환자에게 고릴라의 뇌를 이식시켜 살려낸다. 그러나 그 사람은 고릴라의 포악성을 드러내며 잔혹한 살인 등을 저지르다, 결국 출동한 경찰에 사살된다.’어린 나이에 무척 기이하면서도 소름끼치는 이야기였다. 어릴 때라 생물학 의학 등을 잘 알 리 없었지만 뇌를 이식하는 일, 특히 짐승의 뇌를 사람에게 이식한다는 게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물론 당시로선 공상 속에서나 있을 법한 내용이었다. 그런데도 워낙 충격을 받아서인지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좀처럼 잊혀지질 않는다.

하지만 그같은 공상도 이젠 전혀 불가능한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영국의 줄기세포 연구기관들이 암소 염소 토끼 등 동물의 난자에 인간의 체세포 DNA를 주입, 인간-동물 교잡배아를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런던 킹스대학과 노스이스트 잉글랜드 줄기세포연구소가, 이같은 교잡배아를 만들어 연구용으로 사용케 해달라고, 수정배아관리국에 요청했다는 것이다. 파킨슨병 알츠하이머병 뇌졸중의 새 치료법 개발을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여기서 동물난자는 유전물질을 모두 제거한다지만, 세포핵 바깥에 DNA가 남아있기 때문에 인간-동물 교잡배아는 99.9% 인간, 0.1% 동물이 된다고 한다.

날로 발전하는 과학 의학의 발전이 경탄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무척 두렵기도 하다. 이러다 행여 인간과 똑같이 말하고 사고하지만, 인간도 아니고 그렇다고 소나 토끼 호랑이 사자도 아닌, 제3의 변종동물들이 활개치게 되는 건 아닌가 해서다. 그래서 마침내는 지금까지 인간이 누려오던 ‘만물의 영장’ 자리도 그것들에게 내주어야 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생명윤리와 같은 건 그 다음의 문제가 될는지도 모르겠다. 지나친 노파심일까.

/박 건 영<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