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좀 해 줄래. 너무 시끄러워서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잖아."
    후줄근한 러닝셔츠에 하의는 체육복 바람. 여기에 뿔테 안경까지 걸쳤다. 신림동 고시촌과 노량진 학원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이들. 바로 취업준비생 또는 고시생이다.

    '육봉달' 박휘순이 이번에는 취업준비생을 소재로 한 캐릭터 '노량진 박'으로 다시 뜨고 있다.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취업준비생의 고달픈 애환을 개그로 풀어내 폭넓은 공감을 얻고 있는 것. 갈수록 심각해지는 취업난 문제가 개그 소재로 '재탄생'한 셈이다.

    KBS 2TV '개그콘서트-봉숭아학당'에 등장하는 노량진 박은 '8년 만에 창문이 있는 방을 얻은 노량진의 고시생'이다. 좁은 고시원에서 동료와 어울리다 보니 일반인은 경험할 수 없는 '슬픈' 에피소드들이 쏟아진다.

    고시생들이 좁은 방에 잔뜩 모여 한ㆍ일전 축구를 시청하다가 산소부족으로 실려나간다. 한 고시생은 후반 2분을 남기고 의식을 잃었다가 사법고시 2차 시험에 응시하지 못한다. 이런 방에서 파티를 열고 춤을 출 때는 서로 이어폰을 돌려가면서 귀에 꼽고 음악을 들을 수밖에 없다.

    "재수 시절 실제로 노량진에서 고시원 생활을 해 본 적이 있어요. 평소 동료 개그맨 신봉선 등에게 농담삼아 고시원 생활 이야기를 자주 했는데 재미있다는 반응이었어요. 아예 정식으로 무대에 올려보라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고시원에서는 특히 경찰시험을 준비 중인 '(김)창식이 형'이 노량진 박의 천적이다. 노량진 박의 내레이션에 등장하는 그는 노량진 박이 애지중지하는 개그콘서트 방청권을 몰래 빼 내 데이트를 즐긴다. 노량진 박이 숨겨놓은 좀약을 박하사탕인 줄 알고 먹기도 한다.

    "김창식이라는 이름은 특별히 누구를 지칭하는 것은 아닙니다. '개그콘서트-호구와 울봉이' 코너에 가상의 인물로 사용됐는데 저도 이를 차용한 것이죠. 그런데 실제로 노량진에서 경찰 시험을 준비 중인 김창식 씨가 제 개그를 보고 인터넷에 글을 올리기도 했어요."
    재미있는 코너이지만 어렵게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 이들을 희화화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박휘순은 오히려 취업준비생들이 이 코너를 더 즐긴다고 반박한다.

    "고시원 생활을 하는 분들이 인터넷 게시판이나 제 미니홈피에 '공감간다' '힘을 얻는다'는 글을 많이 올립니다. 첫 방송이 나간 날 마침 경찰 시험에서 떨어진 분들이 모여 이 코너를 보기도 했답니다. 우울했던 그 분들이 방송을 보고 많이 웃었다는 말을 전해들었어요."
    그는 "이 코너를 하기 전부터 나는 고시생 이미지와 어울린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취업이 어느 때보다 어려운 요즘 사람들이 이 코너를 보고 잠시 시름을 잊고 웃을 수 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편 그의 개그는 최근 유행인 '빠른 호흡'의 개그와는 한발 떨어져 있다. 순발력보다는 연기력과 입담이 뒷받침되는 개그다.

    또 겉으로 보이는 어수룩한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터무니없는 자신감으로 묘하게 웃음을 유발한다. 가진 것 없는 육봉달 회장은 '북경오리를 맨손으로 때려잡고 떡볶이를 철근같이 씹어먹을 정도'라며 자신의 화려한 경력을 자랑했고, '패션 7080'에서도 촌스런 시골풍 이미지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압구정동 첨단 패션이라며 자부심을 드러낸다.

    "할수록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게 개그 같아요. 관객의 변화가 워낙 빠르기 때문이죠. 그들이 예상하지 못한 웃음 포인트를 찾기 위해 애쓰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