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오후 7시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그 유명한 베토벤의 4음 모티브에 의한 `운명의 동기'가 과거 구 동독을 대표하던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에 의해 울려퍼졌다. 정명훈이 지휘하는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는 그렇게 인천에서의 첫 연주를 시작했다.

`운명 교향곡' 첫 악장은 빽빽한 악상으로 인해 지휘자의 개성은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다. 다만 458년 역사의 독일 최정상급 오케스트라의 음색은 더없이 중후했다. 묵직한 저현의 기반아래에 목관의 아기자기한 어우러짐은 이날 연주가 범상치 않게 전개될 것이라는 걸 예상케 했다.

2악장을 연주하는 정명훈은 템포를 상당히 여유롭게 설정했다. 지휘자는 유장한 현의 울림을 강조하면서 한치의 오차도 없이 강약 조절을 해 나갔다. 그러나 지휘자가 음악을 너무 느끼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템포가 느렸다. 문득 1960년대 오토 클렘페러의 최 만년의 레코딩(빈 필하모닉 실황)을 떠올리게 할 정도였지만, 클렘페러 만큼의 확고한 틀안에 음악을 담아내진 못하고 있었다. 때문에 악상을 좇는 청자 입장에서 다소 힘든 느낌이다.

1악장의 변형된 4음 모티브가 혼에 의해 3악장에서 다시 울려 퍼졌다. 느린 2악장을 딛고 극적인 형태를 연출했고, 지휘자의 뛰어난 음 배분과 신기에 가까울 정도의 크레센도의 가감은 빼어난 오케스트라의 앙상블과 일체돼 펼쳐졌다. 특히 4악장을 암시하는 금관의 팡파르와 더블 베이스의 정확한 운지는 작품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이었다. 종지없이 현의 트레몰로에 의해 이어지는 4악장. 마지막 악장에서 금관의 포효와 함께 오케스트라의 휘몰아침은 베토벤의 뜨겁고 힘찬 웅변을 잘 대변해 준 연주였다.

인터미션 후 이날 연주의 메인인 브람스의 `교향곡 4번'이 연주됐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장중한 사운드는 브람스 만년의 작품에서도 지속됐다. 1악장에서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는 매우 세련되면서도 세밀하게, 하행하는 3도 음정의 제1주제를 세공했다. 이를 통해 탄탄한 작품의 형태를 하나씩 차근차근 구성해 나갔다. 오케스트라의 고색창연한 울림은 가을에 듣는 브람스에 더욱 어울리는 것이었다.

운명 교향곡과 같이 또 다시 느린 2악장. 여기서도 지휘자의 여유로운 템포 설정은 계속됐다. `안단테'의 악상 기호가 마치 `아다지오'로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미세한 선율의 흐름과 음의 울림을 통해 가슴저린 회한을 극명하게 표출한 점은 인상적이었다.

스케르초 풍의 3악장을 지나 4악장. 바흐의 칸타타 `주여, 당신을 갈망하나이다'로 부터 빌려온 8마디의 베이스 주제에 의한 변주곡으로 32개의 변주곡으로 이뤄진 마지막 악장은 대위법적으로 매우 뛰어난 수준의 경지에 올라있는 작품이다. 지휘자는 확실한 강약 템포의 설정과 변화로 작품을 아기자기하게 주조하고 있었다. 여기에 맞물려 오케스트라 목관군의 아름다움과 금관군의 힘이 더해져 작품의 뼈대를 확고히 구축해 냈다.

음악을 다 듣고난 후 브람스의 `4번 교향곡'을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처럼 연주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쉬운 감이 없진 않았지만, 역시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명성에 걸맞는 음악을 들려줬다는 데에는 부정할 수 없었다. 앙코르로 연주한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1번' 또한 연주회의 분위기와 잘 어우러진 선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