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년 대통령 선거전이 한창 무르익던 무렵이다. 가장 유력시되던 두 분의 후보가 다소 예상밖의 말을 했다. 먼저 한 후보가 그때 한창 서민들에게 인기(?) 있던 옥탑방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했다. 그러자 또 한 후보는 “그런 생활형태에 대해 얘기는 들었지만, 그 용어 자체는 몰랐다”고 이어받았다. 두 분 말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얼핏 분간이 잘 안됐다. 그러나 누구 보다 서민을 위한 정치를 펼치겠다던 분들의 말인지라 어안이 벙벙했다.
한편으론 그렇다면 그분들을 따르고 지지하던 나머지 정치인들은 어땠을까, 사뭇 궁금하기도 했다. 그야 어떻든 그들 중 일부가 새로 정권을 잡아 새 정부를 구성했다. 그리고 처음부터 유난히 강조한 게 이른바 ‘개혁과 평등’이었다. 구악과 구태를 말끔히 뜯어고치고, 특히 각 부문의 양극화 현상을 철저히 해소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정당도 새로 만들었다. 기존의 소속정당으로는 소신껏 추진하기가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그후 4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사이 많은 것이 달라지긴 했다. 우선 옥탑방 살이 등을 하는 국민이 크게 늘었다. 옥탑방을 비롯, 지하방 판잣집 움막 등에 자그마치 160만명이 기거하고 있다. 주택보급률은 벌써 100%를 넘어섰지만, 국민의 41%가 넘는 1천700만명이 셋방살이로 떠돈다. 반면 주택보유 상위 100명에게 몰려있는 주택이 1만5천500채나 된다. 남들은 단 한 채 마련하기도 버거운 판에 한 사람당 평균 155채씩 차지한 셈이다.
그 뿐 아니다. 몇년새 무려 60만명이 새롭게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이들을 포함, 자그마치 869만2천900여명이 빈곤층에 분포돼 있다. 총 인구의 18%로, 무척이나 견디기 어려웠던 외환위기 때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그런가 하면, 소위 상위층 부자라는 이들이 해외에 나가, 단지 골프를 치며 허비하는 돈만도 한 해에 무려 4천억원이 넘는다.
조기유학을 위해 출국하는 초·중·고교생이 한해에 2만명을 넘지만, 급식비를 연체한 초·중·고교생이 2만2천여명이다. 한 달에 몇십만원 몇백만원씩 주고 사교육을 받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수업료를 못내는 고교생이 6만5천여명이나 된다. 참여정부 들어 몇년간 열심히 추진해온 개혁과 양극화 해소의 성적표가 이렇다.
각 분야 개혁과 분배의 정의를 드높게 외치는 사이, 경제는 활력을 잃어 기업들이 움츠리고, 그에 따라 일자리가 나날이 줄어들었다. 지난 해 창출된 이른바 괜찮은 일자리는 총 14만개로, 전년 30만개의 절반에도 못미쳤다. 일자리가 줄고 살림이 어려워지니, 백성들의 가계빚만 계속 쌓여 무려 620조원을 넘어섰다. 반드시 잡겠다던 부동산값은 폭등을 거듭, 이제 서민들은 아예 ‘내집마련의 꿈’을 접어버렸다.
결국 민심이 등을 돌렸다.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사상 최악인 11%로 떨어졌다. 집권여당 지지도 동반추락해 13.6%에 머물렀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디 오피니언’에 의뢰해 20세 이상 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이런 터에 이번엔 정계개편 및 신당 창당 추진에 힘을 쏟고 있다. 이제 국민의 사랑을 잃었으니, 아마도 새롭게 다시 태어나 사랑을 되찾겠다는 의도인듯 싶다.
그러나 얼굴만 바꾸고 몇몇 인물 보태거나 뺀다 해서, 떠나간 민심이 돌아오고 지지도가 다시 높아질까. 그런 일에 열 올리는 사이, 정작 중요한 민생은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지 모르겠다.
온통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계개편이다 뭐다 하는 소리만 높고, 갈수록 버거워지는 백성들 삶에 대한 걱정소리는 거의 들리지도 않는 것 같기에 하는 말이다.
물론 얼굴을 바꾸든, 새 부대에 오래된 헌 술을 붓든 가타 부타 상관할 바는 아니다. 다만 무엇을 하든, 이제는 옥탑방 살이가 진정 무얼 뜻하는지부터 똑똑히 배우고나서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이건 여야 정치인 모두에게 간절히 당부하고픈 말이기도 하다.
/박 건 영(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