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전고려대교수)
지난 24일 밤 11시45분부터 2시간동안 KBS와 MBC TV에서 5개 정당 대표들의 토론이 생중계되는 것을 보고 많은 시청자들, 국민들은 너무나 신기하고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얼마만에 보는 당대표 토론인가. 신기하고 이상하다는 것은 정당의 대표들이 모여서 주요한 당면현안에 관해 TV토론하는 것이 너무나 오래간만이기 때문이다. 지난 수년동안 주요 방송사들은 5개 정당 또는 2~3개 정당 대표들의 토론을 추진했으나 대부분의 정당 대표들이 동석(同席)을 기피해 불발되고 말았다.

국민들에게 정책의 내용과 토론의 기량 등이 비교되는 것을 꺼렸던 것이다. 이날 토론은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주관한 정당정책토론회로서 부동산가격 폭등과 새해예산안, 북한의 핵실험에 따른 대북정책, 한미관계 등에 관해 토론을 벌였다.

1960년 9월 26일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의 닉슨과 민주당의 케네디 후보가 사상 처음 TV토론을 했을때 미국 국민은 물론 전세계의 지식인들은 감탄과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CBS·NBC·ABC 3대 방송이 공동주관하에 4차례 진행된 후보토론은 그때까지 여론조사에서 밀렸던 케네디가 매력적인 스타일, 제스추어, 신선한 정책 제시로 승기(勝機)를 잡을 수 있게 했다.

 이때를 계기로 TV토론은 후보의 인물 됨됨이와 정책을 비교할 수 있는 결정적인 수단으로 인식돼 미국은 대통령 선거때마다 거쳐야 되는 필수적 과정으로 굳혀졌고 여러 선진국으로 확산됐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 선거때 후보들의 TV토론을 의무화시킨 것은 1997년 15대 대선때부터다. 한국방송위원회의 주관하에 3대 방송사가 차례로 토론회를 진행했다.

 16대 국회 막바지인 2004년 3월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의 건의에 따라 돈 적게 드는 선거, 깨끗한 선거, 정책경쟁의 선거를 지향하기위해 선거법을 개정해 합동·정당·개인 등 각종 연설회를 폐지하고 후보들의 TV토론제도를 전면 도입했다.이를 주관하기위해 중앙선관위 산하에 중앙선거방송토론위를 중심으로 16개 시·도토론위, 250여개 지역토론위를 각계 인사 10명으로 구성하고 대통령·국회의원 선거, 지방선거중 각급 단체장과 광역지방의원(비례)후보들은 반드시 토론회를 갖도록 한 것이다. 후보토론과는 별도로 개정 선거법은 각 선거일 3개월전 매달 1차례씩 원내대표·정책위의장·당대표토론회 참석을 의무화하는 규정을 두었다.그 뿐인가. 국회는 작년 8월 정당법을 개정, 국고보조금을 받는 정당의 정책책임자와 당대표는 매년 상·하반기 두차례의 정당정책토론제도를 신설했다. 모두에 소개한 24일의 정당 대표들의 토론은 바로 정당법 39조에 의한 토론인 것이다.

아무튼 전세계에서 선거때 TV 후보토론과 평상시에 당대표(정책)토론을 법으로 규정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다른 나라들이 방송사나 시민단체가 주관하는 후보토론을, 진행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법제화한 것이 이 땅의 현실이다. 특히 매년 대표들의 정책토론을 법에 명기한 것은 사실 자랑보다는 역시 한심한 정치현실 때문이다. 한국처럼 각 정당의 대표들이 합석해 토론하기를 꺼리는 나라도 드물다. 각종 기념행사에는 나란히 참석하지만 상호토론이라면 등을 돌린다. 민주정치의 요체가 무엇인가. 대화와 토론·타협이다. 헌법 등 각종 민주헌정제도를 갖췄고 또 입만 열면 민주주의 민주정치를 역설하면서 당대표들이 상호토론을 기피하는 것은 난센스다.북한의 핵실험, 한미동맹의 균열, 사회갈등, 국론분열, 집값폭등, 교육의 문제점 등으로 나라가 부글부글 끓을 때 방송사나 시민단체 등이 초청하면 당대표들은 언제든지 달려가 토론하고 대안을 내는 것은 의무아닌가.

 언제까지 토론의 유불리(有不利)를 따지고 승리하는, 이기는 토론만을 생각할 것인가. 요즘처럼 중요 현안이 속출하는때 국민들은 매일이라도 당대표들의 난상토론을 기대하고 있다. 각당에서 성명내고 소리치는 구태정치는 졸업해야 한다.

/이 성 춘(언론인·전 고려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