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우 (경원학원재단 사무처장)
이제 대학가에서 비운동권후보가 총학생회장에 당선됐다는 소식은 뉴스도 아니다. 반대로 운동권후보가 당선됐다고 해야 뉴스다. 올해도 각 대학에서 운동권학생회가 부활을 꿈꾸었지만, 몇몇 대학을 제외하고 모두 실패로 끝났다. 비운동권학생회의 고착화현상이 뚜렷하다. 대학가의 이러한 판도변화는 왜 일어나고 있고, 운동권은 왜 학생들의 시야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일까.

요인은 여러가지다. 그러나 실체적 요인은 운동권에 대한 학생들의 이념적시각이 확 바뀐 결과다. 격하게 표현하면 운동권학생회의 지나친 정치참여와 학내문제를 이데올로기적으로 접근하는 것에 대한 배격이다. 운동권 스스로도 학생들의 욕구와 입맛이 변화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알고 있다. 운동권학생회후보의 공약과 구호를 보면 그것이 확연하다. 예전처럼 대놓고 “나는 운동권이요”하는 후보가 없어졌다. 과거에는 `한총련' `자주통일' `반미' `햇볕정책'등과 관련된 내용을 버젓이 공약집에 써넣고 선거운동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눈을 씻고 봐도 운동권이라고 느낄만한 구호는 찾아볼 수가 없다. 비운동권은 공약집에 아예 `비운동권이요'라고 표시하고, 운동권은 운동권냄새가 비치지 않도록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대학가에서 선거가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분위기가 한산한 것도 운동권후보가 투쟁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기위해 한껏 몸을 낮춰 일어나는 현상이다. 일단 운동권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당선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투표성향이 이렇게까지 변한 이유는 무엇인가. 학생들의 실용주의로의 사고변화가 첫째인 것 같다. 선뜻 이해가 안가겠지만, 장기간에 걸친 `대학 6학년제'가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6학년은 대학생이라고 간판을 붙인 학생이면 누구나 1~2년씩 재학중에 해외어학연수를 다녀온다고 해서 학생사이에 붙여진 비아냥의 `학제'다.

특히 미국대학에서 어학연수를 한 학생들은 밀턴 프리드만의 `자본주의와 자유'에 대한 체험은 아니더라도 곳곳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시장주의를 목격한다. 그런데 인천공항에 내리면 딴 세상이 연출되고 있다. 철지난 소모적 이념논쟁에 날을 지새우니 “이래 가지고는 죽도 밥도 안되겠다”며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그것은 운동권쪽에서 보면 불행이고 비운동권쪽에서 보면 행운이다.

사실 운동권이 대학가에서 버림받은 데에는 `386운동권 정치인'의 도움도 적지 않다. 노무현정권을 지탱하고 있는 386운동권출신과 386국회의원도 그렇고, 분배주의 386노동운동가도 대학가에서 운동권을 멀리하게 하는 요소들이다. 누구 때문에, 또 무엇때문에 제때 대학을 졸업하지 못하고 대학을 6학년씩 다녀야만 하는가.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가 없는데…. 요즘 학생들 사이에는 성장보다는 노상 자주와 분배 타령만하는 운동권시각의 `저항 패러다임'에 대한 저항심이 드리워져 있다.

이렇게 반 시장주의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학생들이 학생회선거에서 과연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운동권인가, 비운동권인가. 어학연수를 통해 넓은 세상을 본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실용을 우선시 하는 비운동권쪽으로 붓두껍이 가는 것이다. 대학가에서 운동권이 힘을 못쓰는 것은 학내보다 캠퍼스밖의 요인이 작동하고 있다. 대학에서 실용주의 학생들의 주문을 수용하려고 심혈을 쏟는 것도 여기에 있다. 모든 교육시스템개선이 고품질의 교육과 고품질의 취업에 맞추는 것도 그중 하나다. 그렇지 않고서는 학교도 학생도 살아남을 수 없고, 학생들의 호응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올 대학가 총학생회장선거에서는 운동권이 후보를 포기해 비운동권이 단독출마한 대학도 있다. 내년에는 비운동권후보끼리 대결하는 이변도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대학의 학생회도 이제 학생들의 요구에 따라 실용주의노선으로 돌아섰다. 대학가의 운동권학생회시대가 조용히 막을 내리고 있다.

/이 상 우(경원학원재단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