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영화사들이 한국에서 물러나고 있다. 한국영화와의 경쟁에서 밀려난다는 증거다. 개미가 공룡을 쓰러트린 경우랄까. 한국영화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미국영화와의 경쟁에서 이긴 희귀한 사례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지난 1988년 미국영화 직배가 처음 시작된지 18년이 지난 2006년 현재, 막강한 위세를 떨치던 시절을 뒤로 한 채 미국영화사들은 국내사업을 줄이거나 국내 영화사에게 사업을 넘기는 단계에 이르렀다.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9월, '위험한 정사'라는 영화를 시작으로 국내영화시장을 뒤흔들었던 직배회사 UIP(United International Pictures) 코리아는 파라마운트,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MGM 영화사가 제작하는 영화를 국내에 배급하는 업무를 전담하는 배급전문회사였지만 내년부터 파라마운트 영화사의 배급권은 국내업체인 CJ엔터테인먼트로 넘긴다. UIP의 영업범위가 심각하게 줄어드는 것이다.
영업위기를 당하고 있는 것은 이회사뿐 아니다. 007시리즈의 21번째 최신작 '카지노로얄' 배급 영화사는 '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주식회사'라는 긴 이름을 가졌다. 국내에서 배급영업을 하던 소니 픽쳐스 코리아와 브에나비스타 코리아를 합쳐 하나의 회사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20세기폭스 코리아는 내년부터 국내 DVD직영사업을 포기한다고 한다. 외국영화 특히 미국영화의 국내 흥행기세가 꺾이면서 영업력이 현격하게 줄어든데 따른 시장 판도 변화다. 올해 10월말 현재 외국영화 관객점유율은 38%(영진위통계)로, 10년전인 1996년 77%에 비하면 절반 수준이다. 반면 한국영화는 수년째 50%를 넘기고 있다.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변화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외국영화사를 밀어낼만큼 막강해졌음을 증명하는 숫자다.
얼마전 국산 토종브랜드라고 불리는 대형유통점이 다국적기업의 외국계업체를 몰아낸 사건은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외국업체는 자본력이나 제품의 품질·서비스·마케팅능력에서 월등하게 한국업체를 앞서가며 국내시장을 초토화시킬 것이라고 걱정했지만 결국 국내업체가 유수한 외국기업과의 경쟁에서 일방적인 우세를 차지했다. 막강한 거대기업도 경쟁에서 버티기 어려워지자 마침내 사업을 접었다.
정부의 보호를 받으며 독과점체제로 시장을 지키던 한국영화는 제작자유화와 외국영화수입자유화 조치로 충격을 받았다. 국내에 회사를 세운 외국영화회사는 거대한 자본과 독보적인 콘텐츠를 앞세워 한국영화시장을 휩쓸었다. 미국영화와 한국영화가 경쟁한다는 것은 꿈에서조차 생각하기 어려운 상황이 계속됐지만 가혹한 경쟁을 통해 얻은 생존력은 새로운 에너지로 작용했다. 미국영화사가 국내에 지사를 설립하고 영업에 나섰을때 격렬히 반대한 것은 한국영화가 곧 몰락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한국영화의무상영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스크린쿼터제의 축소나 폐지에 반대한 것 역시 미국영화가 국내시장을 독점할 것이라는 예상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러나 직배가 시작된지 18년이 지난 현재, 스크린쿼터가 축소된 뒤에도 한국영화의 몰락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직배회사들의 사업축소 또는 철수는 개방과 경쟁환경에서 오히려 한국영화는 더 크게 성장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알수 없다. 한국영화가 국내시장에서 미국영화를 제쳤다고 그것이 곧 한국영화가 세계시장에서 미국보다 앞서간다고 할수 없으며, 국내시장에서도 방심한다면 언제든지 판도는 다시 바뀔수 있기 때문이다. 한때 예술영화의 품위를 자랑하던 프랑스영화가 지금은 프랑스에서 조차 기운을 잃어버린 것이나 여러 국제영화제에서 휩쓸듯 주목받던 일본영화가 결국 국내시장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경우는 한국영화계로서는 타산지석이다. 그래도 '왕의 남자'와 '괴물'의 흥행신기록을 세운 2006년은 한국영화산업의 성장을 확인하는 역사적인 해로 남기에 충분하다.
/조 희 문(상명대교수·바른사회 문화포럼 회장)
미국영화 물리친 한국영화
입력 2006-12-12 23:00
지면 아이콘
지면
ⓘ
2006-12-13 0면
-
글자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가
- 가
- 가
- 가
- 가
-
투표진행중 2024-11-17 종료
법원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벌금 100만원 이상의 유죄가 최종 확정된다면 국회의원직을 잃고 차기 대선에 출마할 수 없게 됩니다. 법원 판결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