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북서쪽에 에페수스 유적이 있다. 고대 로마시대 도시 에페수스를 발굴해 놓은 곳이다. 에페수스는 신약성서 '에베소서'로 우리에게 친숙한 지명이다. 사도 바울이 에페수스(에베소)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가 '에베소서'다. 에페수스는 활기에 넘치는 항구도시였다. 유적지에 가면 당시 시대상을 짐작케 하는 다양한 흔적들이 남아 있다. 그 가운데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유적 하나가 '켈수스 도서관'이다. 지금은 도시 중심부에 건물 전면만, 그것도 일부는 허물어진 상태로 서 있지만, 입구 부분부터 공들여 세운 기색이 역력하다.

서기 2세기 초엽 지어진 '켈수스 도서관'은 1만2천권 정도 장서를 보유했다고 전해진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장서수 70만권)에 비길 수야 없지만, 근동에서 이름높은 도서관이었다 한다. 흥미로운 점은 도서관의 지하 통로가 길 건너 대형 목욕탕과 홍등가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책을 읽다 지친 로마귀족들이 이 통로를 통해 '땡땡이'를 치러 다녔다는 얘기다.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보르헤스는 "천국이 있다면 도서관 같은 모습일 것"이라고 했다. 그 자신이 도서관 사서 출신으로서 국립도서관장을 근 20년간 역임했고, '독서광' 명단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법한 인물다운 상상이다. 보르헤스는 책을 너무 읽어 말년엔 시력을 잃기도 했다. 그러나 에페수스 사람들이건, 보르헤스 같은 책벌레건 도서관이라는 인류의 문명 보고(寶庫)에 무한한 애정을 느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도서관'이라는 명칭을 '평생학습센터'로 개칭하는 유행이 경기도에도 불어닥친 듯하다. 몇몇 도서관이 이름을 바꾸는 걸 심각하게 검토중이라 한다. 현대 도서관의 기능이 달라졌다는 건 분명하지만 꼭 '도서관'이라는, 문화와 학문에 대한 긍지가 짙게 밴 호칭까지 굳이 바꿔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양 훈 도(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