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훈도 (논설위원)
2006년이 열흘 남짓 남았네요. 해마다 이맘때쯤 되면 생각나는 시가 있습니다. 좀 길지만 전문을 인용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산서에서 오수까지 어른 군내버스비는/ 400원입니다// 운전사가 모르겠지, 하고/ 백원짜리 동전 세 개하고/ 십원짜리 동전 일곱 개만 회수권 함에다 차르륵/ 슬쩍, 넣은 쭈그렁 할머니가 있습니다// 그걸 알고 귀때기 새파랗게 젊은 운전사가/ 있는 욕 없는 욕 다 모아/ 할머니를 향해 쏟아 붓기 시작합니다/ 무슨 큰일난 것 같습니다/ 30원 때문에// 미리 타고 있는 손님들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운전사의 훈계 준엄합니다 그러면,/ 전에는 370원이었다고/ 할머니의 응수도 만만찮습니다/ 그건 육이오 때 요금이야 할망구야, 하면/ 육이오 때 나기나 했냐, 소리치고// 오수에 도착할 때까지/ 훈계하면, 응수하고/ 훈계하면, 응수하고// 됐습니다/ 오수까지 다 왔으니/ 운전사도, 할머니도, 나도, 다 왔으니/ 열심히 살았으니!'

안도현 시인이 쓴 '열심히 산다는 것'이라는 시입니다. 행갈이를 제대로 해서 인용했더라면 감칠 맛이 더했을텐데, 이렇게 옮겨놓아서 죄송하군요. 한 장의 스냅사진 같은 시입니다. 한 번 읽으면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떠오르고, 다시 읽으면 마음이 짠해 집니다. 참, 교통카드 찍고 버스에 오르는 요즘 세태로 보면 '육이오 때' 얘기로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파트값이 다락같이 오르고, 애들 교육비도 허리가 휠 지경으로 뛴 한해였습니다. 같은 사무실 동료라도 집이 있고 없고에 따라, 어느 동네에 몇 평짜리 아파트를 가졌느냐에 따라 계급이 갈린다지요. 창문도 없는 고시원 쪽방에서 잠을 자다 화재로 숨진 가장도 있었는데 말입니다. 강남 어느 동네 중학생 한 달 사교육비가 비정규직 평균 월급의 두 배나 된다는 기사에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고작 30원을 아껴보려고 머리를 쓰고, 그걸 밝혀내느라 기를 쓰던 버스를 우리가 이제는 완전히 갈아 탄 걸까요? 종부세 세금폭탄론을 들을 때마다 이 의문을 지울 수 없습니다. 물론 두 얘기는 다른 논리를 따라 작동하는 별개의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한 조국의 그늘은 여전히 넓고 깊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지체된 정서'라고 욕을 하셔도 할 수 없습니다. 아래를 보며 자기위안을 삼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고, 이제는 위를 바라보며 무한경쟁을 해야 하는 시대라고 귀아프게 들었습니다. 현실에 떠밀려 남들 못지 않게 아웅다웅 살면서 정서만은 저 70년대 걸 버리지 못하는 이중성이 때로는 괴롭기도 합니다. '지체된 정서'만으로는 무슨 일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이른바 실세가 된 386들의 헛발질로 절감하기도 했습니다.

그저 한 해의 말미에서 젖어보는 감상이려니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시 한 편을 더 인용하겠습니다. 역시 안도현 시인의 '겨울 강가에서'라는 시입니다.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럴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곧 크리스 마스입니다. 수전노 스크루지도 용서받는. 그리고 새해를 맞습니다. 내년에는 여린 눈발을 위해 살얼음이라도 깔기 시작해야 할텐데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는지 자신을 되돌아봅니다. 독자 여러분께 새삼 인사를 드리고 싶네요. 정말 올 한 해 열심히들 사셨습니다.

/양 훈 도(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