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창밖에 눈송이가 나뭇가지에 소복하게 쌓여 있었다. 올 겨울은 몇백년 만에 가장 따뜻한 겨울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해서 눈을 기대하지 않았는데 매우 반가웠다. 창밖으로 비친 눈송이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뒤늦게 일어나 창밖으로 펼쳐진 광경을 목격한 여섯살배기 막내 아란이는 특유의 귀여운 목소리로 밖에 나가서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도 만들자며 보채기 시작했다. 겨우 달래 아침을 먹은 후 장갑과 모자로 중무장하고 아파트 뒤편 오솔길로 나갔다. 경비아저씨가 힘겨운 듯 주차장의 눈을 치우고 있었다. 도와주고 싶었지만 아이의 꿈을 깰까봐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도 여섯 개나 만들고 나서야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집으로 들어 가려는 데 경비아저씨가 눈을 아직도 치우고 있었다. 아이와의 눈놀이도 다 했으니 이참에 아저씨를 도와야겠다고 마음먹고 막내에게 눈을 같이 치우자고 하니 신이나서 빨리 치우자고 했다. 막내는 힘겹게 큰삽에 조금씩 눈을 담아 화단쪽으로 옮기고, 나는 어릴때부터 몸에 밴 삽질로 눈을 화단 쪽으로 던졌다. 혼자 눈을 치우는 것이 버거우셨던 경비아저씨는 나의 조그만 도움에 매우 고마워하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오랜만에 힘든 일을 했지만 피곤하지 않았다. 오히려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남을 돕는다는 것이 얼마나 살맛나는 것인지 느낄 수 있었다. 이면에 200명이 넘게 사는 우리동의 주민중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각박한 인심을 읽을 수 있었다. 자기 집앞 쓸기 캠페인을 하는 것을 들었는데 아파트는 예외인가보다. 두집당 한명이라도 나와 경비아저씨를 도우면 정도 쌓고 더욱 깨끗이 치울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우 장 문(숙지고등학교 교사·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