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충환
사물들은 저마다의 본성을 간직하고 있다. 돌은 돌의 본성이 있으며, 나무에게는 나무의 본성이 있다. 조각가 정현은 자신의 직관으로 이러한 돌의 본성을 발견하고 캐낸다. 작가는 잘 생긴 돌보다는 못 생긴 돌에 더 이끌리고, 막돌과 잡석의 물성에 더 사로잡힌다. 막돌과 잡석은 그 생김새가 제멋대로이며, 그 결 또한 불규칙하고 비정형적이다. 그것을 다루는데 있어서도 순종적이지 않거니와, 우연성이 개입될 여지 또한 크다.

작가는 막돌의 이러한 본성을 훼손하지 않은 채 그것으로부터 사람과의 닮은꼴을 찾아낸다. 막돌의 생김새로부터 온갖 얼굴과 표정을 찾아내고, 그 거친 본성으로부터 삶의 상처를 드러내고, 그 지층으로부터 인고의 시간과 세월의 흔적을 찾아내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정현은 조각의 기본 재료라 할 수 있는 점토를 소성할 때 조차도 손과 해라 대신에 막대기와 부삽을 사용한다. 점토 덩어리를 막대기로 마구 내려치거나 부삽으로 쳐내는 과정을 통해 사람의 모습과의 닮은꼴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은 손에 습득되다시피 한 관성에서 벗어나, 점토 자체의 본성을 드러나게 해준다. 점토의 본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그 속에 숨겨진 삶의 흔적을 형상의 표면 위로 불러내는 것이다. 작가는 잡석과 석탄 덩어리, 점토 덩어리와 아스콘 덩어리, 그리고 침목 등 모든 재료를 이런 식으로 다룬다. 그 각각의 재료에다가 최소한의 손길을 가하는 방법으로써 그 고유의 물성을 간직하면서도, 동시에 그 속에 은폐되어진 사람의 초상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로써 작가의 조각은 재료의 물성과 본성에 천착한 모더니즘 조각에 연결돼 있는가 하면, 모더니즘 조각이 의도적으로 간과해온 형상성을 회복하고 있다는 점에선 모더니즘 이후의 현실주의와 다원주의 조각의 경향성에 연계돼 있다. 작가의 조각이 정통적이면서도 현대적으로 읽혀지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며, 바로 이것이 정현 조각의 특징이며 미덕이다. 그러니까 정통적인 조각의 유산을 견지하면서도, 현대적인 형상성을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전시(인천문화예술회관· 12.20~28)는 조각가 정현이 국립현대미술관에 의해 '2006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것을 기념하여 열린 것이다. 이와 함께 정현의 수상은 예년의 이종구에 이어서 이번에도 인천 출신 작가에게 주어졌다는 점에서 지역 미술계의 역량을 새삼 되돌아보게 한다. 인천문화예술회관이 이 전시를 끝으로 대대적인 리노베이션 공사에 착수한다고 한다. 차후에 지역미술관이 건립돼야겠지만, 먼저 그 차선책으로서 기획된 일일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건물만 리노베이션할 일이 아니라 그 콘텐츠 역시 대대적인 공사가 필요할 듯싶다. 지역 미술계의 역량을 뒷받침하고 견인할 수 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선택적인 기획전시가 주요한 콘텐츠로서 자리 잡아나가야 하고,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보강돼야 한다. 인천문화예술회관의 거듭나기를 기대해본다. /고충환(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