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계 고등학교인 한국애니메이션고(하남시 창우동) 3학년 김다혜(18·만화창작과), 김기애(〃), 이지애(〃)양. 이들은 올해 만화 선진국인 일본과 국내 명문대에 나란히 입학했다.
흔히 실업계고 학생의 대학진학이 놀라운 일로 전해지고 있는 현실에서 일본과 국내 명문대 진학은 또다른 신선함이다.
그러나 지난 29일 몸에 딱 달라붙는 화려한 보라색 '쫄 티'에 짧은 치마, 노랗게 물들인 머리를 하고 학교에 나타난 이들 삼총사를 보는 순간 수수한 모습에 두툼한 안경을 꼈을 것이라는 짐작은 산산이 깨졌다. 잠시 멍해지기까지 했다.
"왜 하필 꼬질꼬질한 모습일 때 찾아왔느냐"는 핀잔까지 들었다.
"수능시험 보라면 인문계 애들에 비해 '완전 꽝'이죠. 하지만 연필을 움직여 선을 만들고 색깔을 입혀 생명을 불어넣는 감각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저희들만의 재능이자 희망이에요."
겉모습과는 달리 쏟아내는 말들은 너무나 당찼고 주관도 뚜렷했다.
다혜양은 지난 11월 일본 도쿄 타마대학교, 기애양은 교토 세이카대학교, 그리고 지애양은 상명대 만화애니메이션과 수시에 각각 당당히 합격했다.
타마대는 무사시노 대학과 함께 '만화 선진국'이라할 수 있는 일본 내에서 쌍벽을 이루는 최고 대학이며 세이카대도 세계 각국의 만화 재능가들이 모인 전통의 명문 학교다. 상명대 애니메이션과도 국내에서 급부상중인 학과다.
특히 다혜와 기애양은 한국 최고 미술대학 출신의 대학생은 물론, 이미 만화 작가의 길을 걷고 있는 '난다 긴다'하는 언니·오빠들과 경쟁해 당당히 입학의 영광을 안았다. 어렵고 까다롭다는 일본어 면접도 JLPT(일본어 능력시험) 1~2급 수준의 회화 실력으로 훌륭히 통과했다.
다혜양은 "실업계 학생들은 정규수업만 끝나면 논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천만의 말씀"이라고 잘라말한 뒤 "방학중에도 자율적으로 학교에 나와 각자 자기 분야에 대한 이론·실습 공부를 한다"며 "인문계 친구들이 영어 단어 외울때 우린 일본어 회화를 공부했고 그 친구들 수학문제 풀 때 우린 만화를 그렸죠"라고 했다.
기애양도 "처음엔 부모님께서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만화 공부해서 대학 가겠느냐는 걱정…. 게다가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만화 작가'라는 직업에 대해 곱지 않은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니까요"라고 했다.
삼총사는 "'만화를 보면 안된다'는 강박적 교육을 받은 부모님 세대로서는 우리를 이해하기 쉽지 않겠죠. 하지만 이렇게 잘 해 냈잖아요"라며 "인문계 친구들과는 차원이 다른 자유로운 생각으로 앞으로 더 발전된 모습을 보란 듯이 보여줄 거예요"라며 활짝 웃었다.
지난 한해 주위의 편견과 우려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희망을 위해 뛰어 온 이들은 올해도 새로운 희망을 위해 쉼없이 뛰겠다는 의욕에 넘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