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단(元旦)의 으뜸 화두(話頭)는 단연 희망이다. 올해도 예외 없이 수많은 인파들이 새해 소원을 빌기 위해 전국의 산과 바다를 가득 메웠다. 소득수준 향상과 주5일 근무제에 따른 관광수요 증가 때문이기도 하나 근래 들어 그 숫자가 두드러지게 늘고 있다. 그러나 이 정도는 약과다. 한때 자취를 감추었던 점쟁이들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무당들도 성업 중이란다. 오죽 했으면 뜬금없는 황금돼지가 클로즈업되었겠는가. 미신이 기승을 부린다는 것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점차 엷어지고 행복지수 또한 둔화됨을 반증하는 것이다.
"돈과 행복 간에는 상관관계가 없다"는 미국 일리노이대학의 에드 디너 교수의 주장은 그동안 정설처럼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카네먼 교수는 소득격차가 큰 집단 간에는 행복도에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을 확인시켜 주었다. 즉 부자들은 가난뱅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행복지수가 높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국가 간에도 확인된다. 영국 레스터대학의 에이드리언 화이트 교수가 작성한 '세계행복지도'에 따르면 덴마크, 오스트리아, 스웨덴, 캐나다 등이 세계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이고 러시아, 인도, 콩고, 짐바브웨, 브룬디 등이 최하위에 머물고 있다. 의외인 것은 조사대상 178개국 중 부탄이 8위에 랭크된 반면 일본이 90위에 머물렀다는 점이다. 돈이 행복의 절대기준일 수는 없으나 부의 축적과 행복도 간에는 '정'의 상관관계가 높음을 알 수 있다.
국별 행복지수랭킹에서 우리나라는 중국(82위)보다 낮은 102위로 하위권에 속했다. 이런 현상은 지난 12월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서도 확인된다. 전국 3만3천 가구의 15세 이상 가구원 7만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경제력, 직업, 건강 등 현재 생활에 만족하는 사람이 28.9%에 불과하고 '나는 중산층'이라 답한 이는 3년 전에 비해 2.8%나 줄어들었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일생동안 본인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46.7%가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미래에 대한 자신감은 줄어드는 반면에 비관과 불안심리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에 대한 연구에서도 동일한 모습이 발견된다. 최근 10년간의 실적을 분석한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조사에 따르면 1993년 현재 5만6천472개 중소기업 중 10년 후인 2003년에 300인 이상 업체로 성장한 곳은 75개(0.13%)에 불과했으며 500인 이상 기업으로 성장한 기업은 겨우 8개(0.01%)뿐이었다. 1만개 창업해야 1곳만이 종업원 500인 이상의 큰 기업으로 성장한다는 뜻이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클 수 있다는 꿈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조덕희 산업연구원 박사는 "1980년대 이후 재벌 계열사나 민영화된 공기업 외에 독립된 창업기업이 삼성전자처럼 글로벌시장에서 인정받는 대기업으로 성공한 사례가 단 한건도 없다"며 "한국경제의 희망이 사라지고 있다"고 한술 더 뜬다.
해외로 유학을 떠난 초, 중등학생수가 사상 처음으로 2만명을 넘어서고 해외이민자 수도 해마다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덩달아 해외이민자들의 국내재산 반출액은 2000년 6억 달러에서 지난해에는 25억 달러를 넘어서는 등 단기간에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해외유학생들의 국내복귀율도 줄어들고 있다. 한국에서 둥지를 트는 것이 더 이상 의미가 없는 모양이다.
능력 있는 자들이 서둘러 조국을 떠나고 남겨진 자들은 희망을 잃어간다면 어찌 되겠는가. 이러니 민초들이 '황금돼지'에 현혹되는 것이다. 아무리 현재가 고단하더라도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는 한 행복지수는 높아질 수 있다. 국민들이 진정으로 무엇을 소망하는지 정치권은 통찰(洞察)하기 바란다.
/이 한 구(수원대경상대학장·객원논설위원)
황금돼지를 갈구하는 뜻은
입력 2007-0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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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3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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