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부를 상징하는 돼지해라고, '부자되세요'라는 다소 낯뜨거운 인사말이 유행인 모양이다. 금년엔 우리나라도 마침내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시대에 접어들 거라는 전망도 나왔다. 듣던중 반가운 얘기다. 하지만 막상 주변을 돌아보면 그 말이 좀처럼 실감나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소득은 오른다는데, 대부분 개개인의 삶은 오히려 더욱 팍팍해지고 나날이 힘겹기만 한 까닭이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눈앞의 벽은 여전히 높게만 보일 뿐이니, 대체 어디가 잘못된 것일까.
올해는 IMF구제금융사태 이후 십년째되는 해다. 날벼락같던 외환사태의 충격은 벗어났다고 하지만, 그 그늘은 여전히 머리위에 무겁게 드리워져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고용불안과 자산불평등에 따른 양극화현상이다. 이른바 신자유주의개혁 처방이 위기탈출을 가능케 한건 사실이나, 기업구조조정과 정리해고로 인한 대량실업도 가져다 줬다. 정규직은 대폭 줄고 그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대체한 결과, 현재 전체피고용자의 절반이 임시직과 일용직이다. 비정규직소득은 정규직의 절반정도에 불과해서, 일자리를 갖고도 소득이 낮은 빈곤층 비율이 대폭 높아지는 추세다. 그럼에도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제도는 밑바닥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금년 복지예산마저 한나라당의 반대로 대폭 삭감됐다.
반면 부유층의 부는 놀라운 속도로 증가했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00만달러이상 금융자산을 보유한 한국 부자의 증가율은 주요 아시아국가 평균보다 3배높다. 여기에 부동산투기 광풍이 몰아치면서 빈부격차는 더욱 커졌다. 일년사이 수억원씩 오르는 아파트는 이제 서민들로서는 평생 모아도 살수 없는 '꿈의 궁전'으로 변했다. 돈가진 자들은 더욱 부자가 되고, 서민은 더 가난해지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 양극화는 당연히 사회 전반적인 위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고용불안과 저소득으로 인해 만혼이 늘어나고 출산의 기피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출산율은 세계 최저수준임에 반해 범죄율은 폭증했다. 특히 살인·폭력 등 강력범죄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매일 평균 33명꼴로 자살이 일어나고, 가족의 집단자살 역시 급증하는 추세다. 부모의 죽음이나 이혼으로 가정이 해체되면서 고아가 되거나 거리에 버려지는 아이들도 늘고있다. 국민평균수명은 늘어난다는데, 노후대책은 서민에겐 아득한 얘기일뿐이다.
이제 많은 사람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현재의 고통과 힘겨움도 인내할 수 있다. 고용불안·소득불안·급등하는 범죄·가족해체 등의 문제는 국가적인 대책이 있어야 한다. 국가가 국민에게 안전하고 안정된 삶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면 이 사회의 내일은 어둡고 불안할 뿐이다. 그 어느때보다 정부와 정치권의 책임이 막중한 시기다.그러나 최근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최고조에 달한 느낌이다. 열에 일곱이 '공직자 절반은 부패했다'고 믿으며, '공직자들이 법을 제대로 지킨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열에 하나도 되지않는다. 가장 불신받는 대상은 국회·정당·정부순으로 꼽혔다. 가히 온 나라가 총체적인 불신의 늪에 빠져 있는 셈이다. 올해엔 대통령선거가 있다. 두눈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임 철 우(소설가·한신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