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주로 수사(修辭)와 설득으로 상대를 감동시키는 기술을 가르쳤다. 사실 설득의 힘은 민주정치가 시행되던 당시 그리스에서 지위 상승을 바라는 사람들에겐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들은 '일신을 위해서나 국가를 위해서나 선(善)을 도모하고, 유능한 사람이 되는 길'을 가르친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그들은 다분히 양면적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수사학이 민주정치 발전에 얼마쯤 도움은 됐지만,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소위 말 잘하는 이들이 자기 합리화를 위해 대중을 기만하는 행위에도 수사학이 이용됐던 것이다. 게다가 그들이 실제로 가르친 것은 '선이란 이런 것'이라는 지혜가 아니라, 선에 대해선 아무 것도 모르면서 선한 자인 체 하는 기술만 가르친 데 불과했던 것이다. 그래서 소피스트를 '궤변을 일삼는 무리'라 하여 궤변론자라 부르기도 했다.
이같은 불합리를 밝혀낸 철학자가 다름아닌 소크라테스다. 따라서 "너 자신을 알라"고 외치던 소크라테스가 '청년들을 그릇된 이론으로 선동, 타락시킨 죄'로 독배를 마셔야 했던 것도 여기에 큰 원인이 있다 할 수 있다. 자신들의 허물을 드러낸 소크라테스가 소피스트들에겐 용서 못할 적일 수밖에 없었고, 또 그들의 궤변에 넘어가지 않을 재판관이 있을 리도 없었던 것이다.
올해는 17대 대통령 선거를 치르는 해다. 비록 아직 11개월 정도나 남아 있지만, 차기 대선 예비주자들의 발걸음은 마냥 바쁘기만 하다. 저마다 국민의 환심을 사고 인기도를 높이고자, 거친 이전투구(泥田鬪狗)마저 서슴지 않으며 선거 분위기를 한껏 돋우고 있다. 여기에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제의까지 편승, 새해 들머리부터 나라 전체가 마치 용광로처럼 끓어오르고 있다.
으레 그렇듯 선거 정국만 되면 '나 잘난'이들의 인기영합적인 갖가지 궤변들이 쏟아져 나오게 마련이다. 자기 합리화를 위해 되지도 않는 변명을 늘어놓거나 자기 자랑과 홍보에 여념 없고, 또 지역감정 따위를 교묘히 부추기는 등 유권자들을 현혹시키는 각양 각색의 말잔치가 벌어지곤 한다. 가뜩이나 그런 터에 이번엔 개헌문제까지 곁들여 혼동을 한층 가중시키고 있다. 무엇보다 개헌을 둘러싼 의견들부터가 자신들의 유불리에 따라 중구난방이다. "개헌 제의는 판 뒤집기를 노리는 정략이다" "개헌 제의를 정략으로 모는 것부터가 정략이다" "지금 굳이 개헌을 논할 이유가 없다" 등등…. 도대체 국민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좋을지 모를 판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그래서 더 혼란스럽다.
그러나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이를 가려내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건 결국 국민 자신의 몫이다. 결코 남이 대신해주지 않는다. 이럴 때일수록 국민이 더욱 눈을 크게 뜨고 깨어 있어야 하는 건 그 때문이다. 대선 주자 한사람 한사람을 면밀히 살피고 따져가며 신중히 선택해야 한다. 개헌 문제도 하나부터 열까지 날카롭게 헤아리는 지혜를 키워나가야 한다. 괜히 정신놓고 있다가 잘못 뽑아놓고, 또 잘못된 결정을 내리고 나서 더 어려워졌다며 뒤늦게 '이민 떠날 생각'이나 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선 안된다.
더 훌륭한 지도자를 뽑고 더 현명한 결정으로 더 좋은 나라 더 잘사는 나라를 만들게 하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국민 자신이다. 한사람 한사람이 소크라테스의 혜안을 갖추도록 항상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하는 이유다. 특히 더는 궤변론자들에게 기만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박 건 영(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