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9월14일 새벽 당시 국회출입 기자였던 필자는 공화당이 자행한 국회 제3별관에서 3선개헌안을 몰래 날치기 통과한 것을 지켜보면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망했다"라는 깊은 절망감을 느꼈었다.
1948년 7월17일 단군이래 처음으로 제헌헌법 민주헌법이 선포된 후 59년동안 우리헌법은 갖가지 이유로 9차례나 개정되는 수난을 겪었다. 9차례나 개헌을 거치면서 국민은 몇가지 귀중한 교훈과 원칙 경험을 얻었다.
개헌을 하려면 국익과 국가발전 민주발전을 위한 확고한 명분과 목적 이유가 있어야 하고 충분한 시간을 두고 국민을 납득시키고 국민간 공론이 활발하게 전개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 국회는 각계 공청회와 전문가의 검토자문 등을 포함해 장시간 심의한 후 민주적 절차, 가급적 합의에 의해 처리해야 된다는 것이다.
국민이 납득하고 동의하며 당리당략이 아닌 공의(公義) 공략(公略)에 입각해 헌법을 고쳤을 경우 헌법의 권위는 더욱 고양되고 국민의 존경심 신뢰감과 생명력은 더욱 길어진다. 노무현 대통령이 새해들어 느닷없이 '대통령 임기를 현 5년에서 4년으로 단축하되 연임을 가능케하고 대통령과 국회의원선거를 일치시키는 내용의 개헌안'을 제의한지 오늘로써 14일째다.
제1야당인 한나라당은 물론 다른 야당들까지 개헌제의의 진실성 진정성을 의심하며 무대응과 반대로 돌아서자 노 대통령은 "개헌에 신임을 걸지않겠다 " "야당이 개헌안처리에 동의하며 요구한다면 탈당도 고려할 수 있다. 개헌제의가 결코 정략적인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야당은 바닥지지율을 올리기 위한 국면전환, 레임덕 막기, 정국주도권잡기, 여당내 신당추진 제동용으로 관측했고 대다수 국민여론의 반대도 여전하자 노 대통령은 "여론도 상황따라 바뀐다" "반대한 사람에게 끊임없이 책임을 묻겠다"는 엄포(?)를 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38년전 공화당정권의 날치기 3선 개헌과 오늘의 노 대통령이 추진하려는 개헌은 전혀 성격 내용 과정이 다르다. 앞의 것은 장기집권을 위한 것인 반면 노 대통령은 국정의 안정적 운영, 비용 절감 등을 명분으로 내세웠고 3선개헌은 불법변칙에 의한 단행이지만 노 대통령은 합헌 합법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이어서 과정도 판이하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개헌추진은 내용과 방법에 문제가 적지않고 시기도 지금은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첫째 5년단임제는 유신과 5공독재의 교훈으로 국민적 합의로 이룩된 것이다. 지난 19년간 단점이 적지 않았으나 그래도 그동안 안정적으로 민주화와 국정이 추진됐다. 둘째 대통령과 국회의원선거는 반드시 일치시킬 필요가 없다. 비용은 들지만 총선은 권력과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및 감시견제라는 중요한 역할을 해준다. 만일 대통령과 국회를 한 정당이 독점할 경우 그것이야 말로 '민주적인 독재'의 길을 열어주는 셈이다.
셋째 개헌은 국가의 장래, 명운(命運)과 직결된 만큼 5~10년간 국민적 토의 공론기간을 거쳐야한다. 일본은 평화헌법의 몇 구절 개정여부를 놓고 50여년간 논의를 해오지 않는가. 넷째 여론은 변한다며 3선개헌과 유신헌법에 흔쾌히 동의했었다는 얘기는 틀린 지적이다. 공화당의 횡포와 대국민협박분위기에서 추진됐다고 봐야한다. 끝으로 부결, 반대한 사람에게 두고두고 책임을 묻겠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얘긴가. 대통령은 누가 뭐라해도 개헌을 추진하기 위해 새해 화두를 개헌으로 잡은 듯하나 국민은 4년연임제 원칙에는 찬성하나 때가 아니며 특히 지금은 경제회생·부동산대책·북핵문제·국민통합·균열된 한미동맹 바로잡기에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래도 꼭 개헌을 해야 한다면 여당후보로 하여금 대통령 임기에 관한 것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후 추진하면 될게 아닌가. 대통령의 개헌집념에 대다수 국민들은 납득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대통령은 개헌제의를 철회해야 한다. 개헌시기는 국민이 알고 있다.
/이 성 춘(언론인·전 고려대 석좌교수)
개헌제의 거둬야한다
입력 2007-01-2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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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3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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