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神)과 운(運)을 탓할지라도 누구도 "이놈의 중력 때문에"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원칙'이다. 모든 사람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지키고 그것으로 인한 어떠한 피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일관된 질서, 그것이 모여 세상을 바로 세우는 기본 뼈대 말이다. 그렇다면, 폐기물 처리의 원칙은 무엇일까? 간단하다. '버린 사람이 치운다'다.
참여정부 들어 가장 많이 쓰인 단어중 하나인 '원칙', 그러나 우리는 누구나 예외이기를 원하는 열외주의 풍조속에서 원칙의 무색함을 누차 목격해 왔다.
소위 배경과 줄이 힘을 쓰는 풍토에서 세상을 바로 세우는 기본 뼈대인 '원칙', 그 원칙을 세우고 지키는 일이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다. 내가 버린 쓰레기는 내가 치운다는 사소한 원칙하나가 세워지고 지켜지는데 무려 10여년이 필요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남양주시 와부읍에 월문천이라는 조그마한 하천이 흐른다. 단아하고 소박한 조선의 여인같은 계곡에서 발원해 와부를 관통, 한강으로 유입되는 이 하천이 얼마전까지 십여년간 방치돼 왔던 산업폐기물로 몸살을 앓았다. 96년 와부읍 월문리에 소재한 제지회사 한곳이 부도를 맞으며 방치된 폐합성수지 1만5천여, 도무지 규모가 짐작가지 않는 어마어마한 양의 폐기물이 십년간 엉뚱한 자리보전을 하고 있는 사이 참으로 많은 이들이 속을 끓이며, 월문천과 함께 아팠다.
월문천이 찌든 때를 벗기까지는 한결같이 애쓴 공신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었다. 남양주시 환경자원과 폐기물관리팀이 그들이다. 시는 총 16회에 걸친 끈질긴 조치명령과 고발을 통해 '폐기물은 버린 사람이 치워야 한다'는 원칙을 일관되게 고집해 왔다. 여기에 검찰의 순조로운 협조가 삼박자를 이룬 결과 '행위자에 의한 방치폐기물 전량처리'라는 보기 드문 성과를 얻었다.
이번 성과의 가장 큰 의미는 '국고낭비없이 폐기물방치의 장본인으로 하여금 폐기물을 처리하도록 한 것'이다. '버린 사람이 치운다'는 원칙하나를 세우고 지키는데 십여년이 걸렸지만, 그 원칙을 바로 세운 것이 이번 일의 성과 그 자체라는 얘기다.
혹자는 이런 고집이 바보스럽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행정대집행이라는 보다 손쉬운 도구를 두고 너무 먼길을 돌아 온것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러나 언뜻 손쉽고 편해 보이는 방법이 남기는 후유증은 여간 만만치가 않다. 행정대집행은 대집행 비용의 체납으로 이어진다. 스스로 치울 의사가 없는 자가 비용을 납부할 리 만무하다. 재산압류와 은닉이라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동안 국고와 행정력은 낭비되고 최악의 경우 사태의 장본인은 파산을 선언한다. 어디 그뿐인가? 막무가내식 '배째주의'에 하나둘 예외의 자리를 내주다 보면, 어느새 원칙은 도둑맞고 '법을 지키는 것이 손해'라는 의식이 사회 저변에 자리잡게 된다. 법치의 근간이 흔들리고 급기야 망국으로 치달을지 모른다. 엄살이 아니다. 국가와 행정은 모든 약속의 상징적 기준이다. 기준이 원칙을 훼손하면, 누구도 원칙을 지키지 않을 것은 자명하다. 더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할 것인가.
시가 오랜시간을 두고 바로세운 '원칙'하나가 그 어느 때보다 긴요하고 반가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원칙은 의미있는 선례로 남아 유사한 사례가 발생할 때 힘을 보탤 것이다. 그것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선순환의 문을 여는 원칙의 힘이다. 바로 세운 원칙을 통해 얻게 될 남양주의 힘이다.
/김 영 수(남양주시의회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