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한구 (수원대 경상대학장·객원논설위원)
올 시즌 대학가의 스토브리그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근래 들어 메이저대학들을 중심으로 교수확보율 제고에 열을 올리는 까닭이다. 금년에도 상당수의 대학교수들이 직장을 옮겼다. 그 와중에서 수도권 모 대학의 촉망받는 젊은 교수 2명이 동시에 직장을 옮겼다. 한 교수는 월급이 너무 적어 도저히 생활하기가 힘들다며 일반 기업으로, 다른 한 교수는 연구 부담이 지나치게 과중하다며 다른 대학으로 각각 전직했다. 두 교수의 공통점은 계약제 교수이다. 계약제 교수란 연봉 및 근무기간을 계약으로 정한 교수로서 계약이 만료되면 다시 재계약하던가 아니면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는 교수로서 비정규직인 셈이다.

필자가 과문한 탓에 이 제도가 언제부터 국내 대학에 도입되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분명한 점은 지난 외환위기 이후부터 보편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학령인구수는 점차 감소하는데 반해 대학수는 급증했다. 지방자치제 실시는 대학수 증가를 부채질했다. 글로벌라이제이션은 국내 대학들을 더욱 압박했다. 정부 또한 당근식 지원정책으로 대학의 변화를 강요했다. 차제에 대학들은 다투어 품질경영과 수익성 위주의 경영으로 전환했다. 신상품을 출시하는가 하면 교육환경을 개선하는 한편 매출증대와 비용축소에 주력한 결과 대학들 또한 기업들처럼 현금보유율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계약제교수 숫자도 덩달아 급격하게 늘어났다. 비정년 교수 채용건수는 2004년 384명에서 2006년 상반기에는 837명으로 늘어나는 등 불과 2년도 채 못되어 2배 이상 급증한 것이다. 이로 인해 2006년 4월 현재 196개 대학의 비정년 교원수는 2천268명에 이르렀다.

그러다보니 매년 재계약철만 되면 크고 작은 일이 빈발하곤 한다. 수년간 근무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사직해 대학들을 당혹스럽게 하는가 하면 부득이 재계약을 해야만 하는 교수들은 계약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머리털이 한 움큼씩 빠지기도 한다. 살아남느냐 혹은 탈락하느냐 그야말로 비정규직 교수들은 하루하루 피를 말리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러다보니 연봉 2천만원짜리 등 상식이하의 저임금을 받는 사례들도 흔히 발견된다. 맞벌이교수는 보통이고 심지어 교수 부인이 부족한 생활비를 벌충하기위해 할인점 파트타이머로 일하고 있다는 미확인소문도 떠돈다. 부당해고에 대한 시비도 잦아지고 있다. 국내 대학교수시장이 너무 협소한 관계로 재계약 혹은 재임용에서 탈락교수들이 설 땅이 없는 탓이다. 이러니 재계약 탈락교수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대학을 상대로 일전불사(一戰不辭)하는 것이다. 일전 모 사립대학에서 해직된 교수가 판사를 석궁으로 테러한 사건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문제는 문제를 확대재생산하게 마련이다. 작금 들어 교수지망생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개점휴업중인 대학원이 점차 늘어나면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대학의 실험실은 대학원생을 구하지 못해 연구를 중단하는 안타까운 일도 발생하고 있다. 해외유학생들의 국내 복귀율도 축소되고 있다. 학생들의 교수에 대한 태도도 옛날 같지 않다. 대학이 온정주의를 포기하고 사부(師父)들이 경제논리를 좇아 수년간 공들였던 제자들을 내동댕이치니 말이다. 군사부일체는 흘러간 유행가쯤으로 치부해야할 판이다.

청년실업률이 비상히 높은 것은 비록 대학만의 탓은 아니나 우골탑(牛骨塔)이 발붙일 곳은 더 이상 없다. 교수들의 생산성을 자극하는 방향으로의 제도개선은 바람직하다. 환경변화에 지극히 비탄력적인 대학의 타성이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대학들을 경제논리에 따라 재단(裁斷)해야만 하나. 이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논리는 물론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읊조리던 동반성장정책과도 배치된다. 대학들이 지금처럼 비정규직에 연연하는 한 그 피해가 국민 모두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이 한 구(수원대경상대학장·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