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배 (인하대 법대학장·객원논설위원)
지난 주말의 고향. 동네 입구에 큼지막한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대산읍 ㅇㅇㅇ씨 자제 ㅇㅇ대 합격. 고향을 떠난 지가 오래되어 현수막의 주인공이 정작 누구인지는 가물가물하다. 그러나 이웃을 축하해주는 동네 인심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일종의 편안함을 만끽한다. 사실 대학에 있다 보면 두 가지 부탁이 가장 많다. 하나는 급하게 병원에 가야 하는데 대학병원에 아는 사람 없느냐는 것이다. 행정체계가 달라 별 도움을 주지 못할 때마다 미안하다. 다른 하나는 대학입학 정보다. 성적이 얼마쯤인데 과연 가능한가 하는 문의다. 그러나 대학마다 입학기준과 반영비율이 달라 알 수 없다는 답변을 할 때마다 답답하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힘 빠진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대한민국의 진정한 백성이 되려면 고3부모를 거쳐야 된다는 말을 되새긴다. 그 때문일까. 아무리 가까운 사이일지라도 대학입학 여부를 먼저 묻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 되어 버렸다. 많은 부모가 내 자식이 천재 혹은 영재가 아닌가 하고 기대를 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대학입시라는 현실에 부딪히면 내 자식이 이 정도였던가 하는 자성과 함께 입시제도에 대한 불만이 쌓이게 된다. 대학에 입학시키기까지 우리의 부모들은 변화무쌍한 입시정책과 치열한 경쟁에 끝없이 시달린다. 사교육비 때문에 가계가 기울고, 자식의 입시스케줄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는 부모가 없다. 자식에게 공부 좀 잘 하라고 호통을 쳐 보지만 성적 때문에 가출한다거나 자살했다는 뉴스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렇게 키운 자식이 대학에 입학하지 못해 받는 스트레스는 감당하기 어려운 분노가 된다. 교육부의 3불 정책과 자율화의 이름으로 기형화된 대학의 입시잣대. 그 긴 고통의 터널을 겪어 본 부모들에게 남는 것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자식이 어느 대학에 입학했는가에 따라 부모의 능력을 판단하는 나라. 자식의 사교육비를 위해 부정을 했다던 공직자를 다시 되돌아보게 만드는 나라. 선진 국가에 필수적이라는 산업클러스터는 없어도 대치동의 대입 학원 클러스터·공무원 시험을 위한 노량진 클러스터·사법시험을 위한 신림동 학원클러스터가 성업중인 나라. 정부의 엄청난 부동산 정책을 만들어낸 8학군과 대치동의 입시파워에 가담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게 만드는 나라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연금도 노후도 불투명하다는 우리나라에서 자녀 교육에 대한 열정의 끝은 무엇일까. 교육 때문에 손에 쥔 것이 없는 부모들이 부동산에 몰린다. 정부나 직장 어디에도 노후를 기댈 수 없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누가 어디에서 얼마를 벌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투기 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부모들의 좌절감은 애처롭고 비참하다. 평생을 바친 직장의 연금보다도 아파트 당첨에 일생을 걸어야 하는 나라이고, 서울이나 수도권의 특정지역에 살아야만 부자가 되는 나라임을 뒤늦게 알아차린 부모님들. 그런 부모들에게 은행은 직장이 변변치 않고, 소득이 일정치 않다는 이유로 대출을 제한한다. 그들에게 더 이상 무슨 희망이 있을까. 그런 모습으로 일생을 살아온 부모가 불쌍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젊은이들은 결혼은 해도 자식 낳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유혹은 끝이 없다. 폭등하는 지역에 아파트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좌절했던 부모들의 텅빈 가슴을 외국펀드가 손짓한다. 욕하면서 배운다고 했던가. IMF 체제와 외국 투기자본을 비판했던 우리들이 대박의 꿈을 역설하면서 동아시아를 향한 한국형 투기자본을 부추기고 있다. 그 옆에서 차이나 펀드와 같은 외국 펀드에 세금을 감면해 준다는 정부의 정책이 거들고 있다. 조기 유학과 해외여행 적자가 문제라던 정부가 환율 조정을 위해 외국의 투자를 장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저런 훈수와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정책변화를 보면서 생각한다. 상투없는 펀드가 세상 어디에 있다는 것인가.

올해도 어김없이 각급 학교의 졸업식이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입시 때문에 슬픈 부모가 된 터널속의 아빠들이나 펭귄아빠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정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신뢰받지 못하는 입시정책의 휘둘림 속에서 미래가 없어진 부모들을 보면서 묻는다. 국가와 공동체 전체를 리드할 수 있는 참된 지도자를 만난다는 것이 이렇게도 어려운 일인가.

/김 민 배(인하대 법대학장·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