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용완(논설위원)
설을 앞두고 민족의 스승 안창호 선생의 일화가 잠시 스치고 지나간다. 이는 나라와 민생을 우선시한 선생의 삶이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선생이 약관을 갓 넘긴 젊은 나이 때 일이다. 미국으로 건너가 샌프란시스코에 자리를 잡은 선생은 동포의 옳지 않은 삶을 보게 된다. 크지도 않은 조그만 한인사회에서 동포들은 분열과 불신, 가난 등 누추한 삶을 살고 있었다. 선생은 먼저 비를 들고 더럽혀진 동포 집을 청소하는 것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한인 한사람 한사람이 곧 한국을 대표하는 사람이다'라는 것이 선생의 지론이었다. 이를 동포들에게 강조하고 실천하면서 동포사회는 그의 모범적인 삶을 따라 살게 됐으며, 1년 후에는 미국인도 감탄하게 됐다고 한다.

선조들은 한해를 시작하는 날인 설을 상서롭게 여겨 근신하며 온갖 정성을 들여 맞이했다. 설의 유래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설은 '시린다' '사간다'라는 옛말에서 유래됐는데, '삼가다' 또는 '조심하여 가만히 있다'의 뜻을 갖고 있다 한다. 여기에 더해 농사가 근본이었던 농경사회에서의 새해 첫 시작은 축원을 드리는 매우 뜻깊은 명절로 여겼다. 온가족이 모여 복과 무병, 무사와 풍년을 기원하며 조심스레 한해를 시작했고, 조상을 살피고 덕담을 주고 받는 것은 빼놓을 수 없는 통과의례였다.

이쯤에서 우리의 현실을 살펴보자. 복을 빌고 덕담을 나누며 조상을 찾아 뵙는 설을 잊고 사는, 잊으려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여러 사연이 있겠지만 이 중 일자리를 잃고 고향찾기를 포기한 사람이 대표적일 것이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물어 보면 대답하는 사람마다 이유와 책임져야 할 계층이 거의 같다. 정치권이다. 입은 민생을 얘기하면서 생각과 행동은 기득권과 정권창출에 맞춰져 있어, 이들이 말하는 민생은 믿음이 전혀 가지 않는다는 게 일반적이다. 개인적인 것을 제쳐 놓고 모든 것을 정치권으로 모는 것은 문제가 있겠지만 몇 년간 이어지는 일자리 감소에도 내논 대책은 이를 반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결국 정치권이 정권창출을 위한 목전지계만을 생각, 정작 해야할 일은 손을 놓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어느 취업포털이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차기정권이 가장 먼저 풀어야 할 과제로 일자리를 꼽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현 정권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과 직장인 또한 실직에 대한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는 말이 된다. 어디에 민생의 중점을 두느냐는 복지수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복지의 최상을 고용확대로 꼽는 현실이라면 정치의 실종을 의미하는 것으로, 민초의 배를 불려야 하는 정치가 오히려 서민을 굶기는, 근본을 행하지 않는 가장 큰 우를 범하고 있다 하겠다.

정치권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여당이 민생살리기에 실패, 정권재창출이라는 지상과제에 문제가 발생하면서 집단으로 당을 떠났다. 이들이 다시 뭉쳐 중도개혁대통합을 기치로 출항에 나섰다. 노무현 대통령과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도 청와대에서 만나 민생회담을 갖고 공동문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민생경제현안으로 부동산대책과 국민연금개혁, 노인수발보험제도 도입, 대학등록금 경감, 지방일자리창출과 투자활성화, 빈곤층대책 등이 포함돼 있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이 지금껏 그래왔듯이 당장을 모면하기 위한 정치쇼가 돼서는 안된다. 중요한 것은 진실과 실천이다.

그래서 설날 정치인의 행보가 그 어느 때보다 궁금하다. 축제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찾아다니며 건재를 과시할 것인지, 삼가며 민생을 생각할 것인지 두고 볼 일이지만, 설날의 의미와 안창호 선생의 실천 덕목을 되새기는 날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궁극적으로는 민족이 대이동하는 날 차량꼬리가 길어져 고향가는 길이 더욱 아득해도, 설날 모두 모여 덕담을 나누는 가족이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조 용 완(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