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서울 성북구 안암5거리. 입춘이 지나서인지 햇살은 따뜻하다. 일요일이고 게다가 오전시간이라 거리는 한산하다. 지나는 차도 사람도 드물다. 왕복 2차선 차도를 사이에 두고 길 한편에서 '레디, 액션'이라는 소리가 큼지막이 들린다. 그러자 말끔히 양복을 차려입은 한 사내(정태수 役)가 검정색 가방을 들고 누군가에 쫓기듯 불안한 표정으로 발길을 재촉한다. 십여발짝 걸었을까 '컷!' 소리가 들리고 반대편 길에서 뛰어온 남자와 비디오 카메라에 담긴 모습을 들여다보며 진지하게 대화를 나눈다.
독립영화 '안드로메다'를 제작중인 초짜 감독 임성태(32)씨와 배우들의 모습이다.
한창 촬영중인 이 영화는 돈 1억원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복수와 반전의 두뇌게임, 퍼즐맞추기식의 영화다.
이들은 굳이 영화의 장르를 꼽는다면 '퍼즐러'라고 했다. 퍼즐(Puzzle)과 스릴러(Thriller)를 합쳐 줄인 말이다. 사실 퍼즐러라는 장르와 용어는 영화계에서 사용하지도 있지도 않다.
영화촬영 장소의 분위기는 그간 극장에서나 봐오던 소위 블록버스터, 상업영화와는 비교가 안될만큼이나 너무나 초라하다. 아니 허술하다고 하는 편이 나을 듯 하다.


하지만 영화제작 과정 내내 감독과 스태프, 배우들의 모습은 그들이 아마추어임에 틀림없지만 눈빛과 목소리, 행동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프로다워 보였다. 어쩌면 너무하다싶을 정도로 프로처럼 보이려 의식하는 모습마저 느껴졌다.
촬영장비라고는 6㎜ 카메라 하나와 붐마이크가 전부다. 전문배우도 없다. 열댓명되는 배우들 중에 전문배우는 단 한명도 없다. 대학생과 기업체 직원, 고등학교 교사 등 그들의 직업도 다양하다. 이들은 평일에는 각자 자신의 일터에서 일하면서 일주일에 한번 모여 영화를 찍는다. 차량이나 의상, 심지어 점심밥을 나누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로만 영화를 제작한다는데 그들은 어떠한 아쉬움도 없다.
하루 촬영시간은 고작 3~4시간 정도. 감독의 컷소리가 나면 시나리오를 받아들고 대사를 외우고 서로 짝을 지어 연기연습을 한다. 30분 분량의 영화를 찍고 있지만 지금까지 촬영분은 무려 60분짜리 녹화테이프 5개를 훌쩍 넘어버렸다. 촬영내내 이들의 어색한 모습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흥미거리를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행인들은 잠시 머뭇거리며 구경하다 재미있다는 듯 키득키득거리며 지나쳐간다.
극본과 감독, 장소 섭외 등 1인 다역을 맡고 있는 임성태 감독은 독립영화에 대한 매력을 이렇게 정의한다. "방송국에서 조연출로 2년 넘게 일해왔지만 정작 내가 재미있어하는 작품은 만들지 못했다"며 "짧은 이야기이지만 나만의 생각을 작품으로 만드는 것, 그게 독립영화다."
임 감독은 첫 감독 데뷔작인 이번 영화를 '독립영화제'에 출품하려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자신이 직접 쓴 시나리오를 친구들과 함께 수없이 고쳐가면서 그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냈고 기존의 영화와는 분명 다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인공 정태수 역을 맡은 김지환(32·현직 교사)씨도 "한때 영화를 공부했던 친구들이 대부분이라 감독과 배우로서, 스태프로서 각자의 역할을 충분히 소화해내고 있다"며 "진솔한 우리의 삶 그대로의 모습을 비추고 되돌아보는데 영화는 훌륭한 도구"라고 말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독립영화니 상업영화니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지금이 중요하다"라며 또다른 촬영지로 자리를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