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해인(수녀·시인)
나는 경부선 열차를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평일 보다 주말에는 사람들이 많아 복잡한데다가 너도 나도 끊임없이 주고 받는 말소리, 휴대전화 소리 때문에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매우 힘들고 괴로울 때가 많다. 예전에는 그래도 눈을 감고 조용히 명상하거나 글을 쓰고 책을 읽고 하는 일들이 가능하였지만 요즘은 그렇지 못하다.

이야기 할 땐 옆사람에게 방해되지 않게 조용히 하고, 휴대전화는 진동으로 해 놓으며, 통화가 필요하면 객실에 나가서 하라는 안내방송을 되풀이하지만 아무도 그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우리의 무감각하고 무관심한 현실이 안타깝고 슬프다. 여러명이 앉아 하도 시끄럽게 이야기 해 큰 방해가 될 적엔 승무원을 시켜 전달한 일도 몇 번 있지만 이 또한 번거로운 일이다.

그리 긴 시간도 아닌데 그렇게 쉴새 없이 휴대전화를 해야만할까, 내용을 들어보니 그리 긴급한 일도 아닌 것 같은데 잠시만 참았다가 목적지에 내려서 하면 안 되는 것일까. 때로는 전화의 존재 자체를 원망하는 마음이 들다가 '어떤 위기상황에서는 휴대전화 덕분에 생명을 구하는 일도 생기니 좋은 마음으로 이해를 해야지'하는 쪽으로 마음을 돌리고 만다. 꼭 기차 안이 아니라도 공공장소에서는 습관적으로 목소리를 낮출 줄 아는 고요한 우리가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혼자서는 커도/여럿이 모이면 낮게 낮게/ 깊이 있는 말일수록/ 눈으로 하기/화가 났을 때는 아껴서 쓰기/보이지 않으면서/꽃향기로 남고/ 만져지지 않으면서도/화살되어 가슴에 꽂히네 -이용순의 동시 <말> 한번은 내가 어느 성직자에게 '그만하면 착하십니다'라고 표현한 일이 있다. 그는 매우 서운해 하며 앞의 '그만하면'이란 말은 왜 들어가야 하느냐고 따져서 내 나름대로 변명을 하느라고 혼이 났었다. 또 한 번은 내게 두 권씩 오는 책을 하나씩 받아가는 동료에게 '공짜로 책을 얻어 참 좋겠다'고 하니 '공짜'라는 단어가 자존심 상한다고 하여 '그럼 덤으로 가져간다고 할까요?'라고 대답한 일이 있다. 이렇듯 우리가 악의없이 내뱉는 보통 말도 때로는 상대방의 비위를 거슬리게 한다면 충동적으로 마구 내뱉는 극단적 부정적인 말들은 인간관계를 결정적으로 그르치는 계기가 된다.

내가 좋아하는 어느 지인은 음식점에서 밑반찬을 추가로 청할 적에도 '이것 갖다 주세요' 라고 명령조로 말하지 않고 '이것 좀 더 갖다 주실 수 있나요?' 하는게 인상적이었다. 그는 나이가 한참 아래인 사람들에게도 결코 무례하게 굴거나 반말을 하는 일이 없다. 매사에 늘 순하고 부드러운 표현을 찾아 쓰는 그의 모습에서 인품의 향기가 절로 느껴졌다.

매일 말을 하고 살아야하는 일상의 길 위에서 어떠한 경우에도 언어를 순하고 고요하고 부드럽게 갈고 닦는 노력을 해보자. 특별히 올 한해는 각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남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가만 가만 이야기 하는 연습, 누군가와 주고 받는 대화에서는 상대를 배려하는 따뜻하고 순한 단어를 더 많이 찾아서 연습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누가 고운말 하면 귀담아 듣고 수첩에 적어두기, 안 좋은 말을 들으면 어떻게 바꾸어 말 할 수 있을까 숙고해 보기, 국어사전을 자주 들추어 보며 우리말 공부하기, 책에서 발견한 덕담이나 좋은 구절을 외워두었다가 나도 한 번 인용해 보기….

매일 우리가 하는 말은/역겨운 냄새가 아닌/향기로운 말로/ 향기로운 여운을 남기게 하소서// 우리의 모든 말들이/이웃의 가슴에 꽂히는/기쁨의 꽃이 되고/ 평화의 노래가 되어 세상이 조금씩 더 밝아지게 하소서/누구에게도 도움이 될 리 없는 험담과 헛된 소문을/ 실어나르지 않는 깨끗한 마음으로/깨끗한 말을 하게 하소서// 늘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는/사랑의 마음으로/사랑의 말을 하게 하시고 남의 나쁜 점 보다는/좋은 점을 먼저 보는/긍정적인 마음으로/긍정적인 말을 하게 하소서-자작시 '매일 우리가 하는 말은'.

/이 해 인(수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