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성춘 (언론인·전 고려대 석좌교수)
"지금 나라안은 인플레·실업·기아와 빈곤·종족간의 분쟁 등 어려운 문제들이 산적한데 대통령은 언제까지 호화판 낭비성 외유(外遊)를 계속할 것인가. 국민이 외유나 하라고 대통령으로 선출해 준 줄 아는가…."

2002년 8월 나이지리아의 야당과 언론들은 대통령에게 불필요한 외유를 중단하라고 소리를 높였다. 앞의 글은 최대 일간지인 '이날(The This Day)'이 사설로 강조한 대목이다. '이날'지에 따르면 오바산조 대통령은 1995년 5월 집권한 이후 4년여동안 거액을 들여 무려 100여 차례나 외국순방에 나섰고 대부분 런던, 파리, 제네브 등에서 만유(漫遊)를 했다는 것이다.

장기집권과 부정축재로 축출된 인도네시아 수하르토의 후임인 A 와히드 대통령은 무능에다 낭비외유로 쫓겨났다. 1999년 10월 취임한 그는 국민의 경제회생과 부패척결 등의 요구를 외면하고 1년2개월동안 7~10일에 한번씩 총 50여회의 외유를 하느라 400여억을 낭비해 국민의 분노를 샀다.

국가원수가 관계국을 방문 또는 국제회의에 참여하여 국익을 신장·확보하는, 이른바 정상외교는 반드시 필요하다. 20세기 이래 정상외교가 활발했던 시기는 1960~70년대였다. 하지만 차츰 선진국들이 의회와 국민의 감시속에 특별한 경우 외에는 자제한데 반해 대부분의 중·후진국의 정상들은 정상외교로 지도력과 능력을 과시하려는 듯 거창하고 요란한 외유를 즐겼다.

드디어 외유병(病)을 막는 천적(天敵)이 나타났다. 외유중에 쿠데타가 발생한 것이다. 1970년 3월 캄보디아의 시아누크왕은 외유중 논롤 장군에 의해, 1971년 1월 M 오보테 대통령은 인간도살자인 이디 아민 소령에 의해, 1985년 수단의 J 누메이리 대통령은 S 다하브 국방장관에 의해 권좌에서 밀려났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후 23번째 해외나들이로 지난 11일부터 1주일동안 스페인·로마교황청·이탈리아를 순방했다. 지금까지 같은 나라를 중복 방문한 것까지 포함하면 모두 49개국을 방문한 셈이다.

작년 11월 베트남과 캄보디아 방문때까지 20차례 해외순방비용은 총 547억8천여만원으로 집계됐다. 한번 나들이에 평균 27억3천900만원이 소요된 것이다.

작년 12월 이후 이번 3차례 방문까지 합하면 비용은 80여억원이 증가, 총 620여억원이 넘어 역대 대통령중 최고액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해외 나들이로 노태우 10회 452억원, 김영삼 14회 523억원, 김대중 전 대통령은 23회 585억원을 쓴 바 있다.

정상외교 해외순방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선·중진국들은 꼭 필요한 경우 외에는 정상의 나들이는 자제하고 총리나 장관을 파견·순방케하고 있다. 더구나 우리 국내에는 얼마나 크고 중요한 숙제들이 쌓여있는가. 세계에서 한국처럼 전세기에 많은 경제인·수행원들을 동승시켜 정상외교에 나서는 나라가 현재 과연 몇 나라나 있을까. 우호증진 투자유치 시장개척이라고 하지만 거창한 나들이의 효과와 생산성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

사실 정상이 직접 각 대륙 수십개국을 순방하는 시대, 정상외교 시대는 지났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이다. 이는 노 대통령의 정상 외교에 대해 공연히 시비나 문제제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상당수 국민들은 해외나들이가 혹시나 경제력 과시인지, 국내에서는 푸대접이나 해외에서는 대우를 받기 때문인지, 국내 문제로 머리가 아파서 나가는 것은 아닌지, 전임 대통령들도 다녔던 만큼 그들보다 더 많이 다녀야겠다고 고려한 것인지 궁금해 하고 있는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지금은 정상외교보다 국내 숙제, 즉 경제회생 실업 국민화합 대북문제 한미동맹복원 등에 우선적으로 노력해야 될 때라는 점이다.

앞으로 남은 임기 1년동안 노 대통령이 꼭 참석해야할 경우 외에 몇차례나 해외나들이에 나서서 최고 최대 기록을 수립할지 국민들은 지켜볼 것이다.

/이 성 춘(언론인·전 고려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