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사회적 자본 확충을 위한 기본조사 및 정책연구' 보고서를 보면 불신을 0, 신뢰를 10으로 해 공공기관과 민간기관에 대한 신뢰도를 측정했더니 국회가 3.0으로 최하위였고, 정당(3.3) 정부(3.4) 지자체(3.9) 검찰(4.2) 법원(4.3) 경찰(4.5) 노동조합(4.6) 대기업(4.7) 군대(4.9) 언론(4.9) 등 거의 대부분이 중간값인 5에 미치지 못했다. 특히 국회·정당·정부·지자체에 대한 신뢰는 낯선 사람에 대한 신뢰(4.0)보다도 낮았다. 국가기관의 공정성에 대한 불신도 응답자의 70%가 '공직자 2명 중 1명은 부패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공직자들이 법을 제대로 지킨다'고 생각한다는 응답은 5%에 불과했다. 또 '법원 판결이 공정하다'는 응답은 50%에 머물렀고 '경찰의 법 집행이 공정하다'는 응답도 43%에 그쳤다. 사정이 이러니 수백억 비자금 조성해 구속되자 나만 왜 이러냐며 볼멘소리 하는 기업주나 언제 잘릴지 모르니 지금 무조건 많이 받고 보자고 버티는 노동조합의 행태를 어찌 나무랄 수 있겠는가? 총체적인 불신사회로 달음질 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여기서 특히 사회적 자본의 대표적 유형으로 간주되고 있는 '신뢰'는 사회적 관계를 전제로 사람들 간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며, 이를 기반으로 관련 행위자들은 협력을 할 수 있고, 감시와 통제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서로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들 간의 사회적 관계는 일회적이고 기회주의적이라서 다른 유형의 사회적 자본 형성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신뢰(Trust)'의 저자 후쿠야마 교수는 신뢰가 국민경제 성과 달성에 가장 중요한 결정요인이라고 강조하면서 구성원 간에 신뢰가 낮은 '저신뢰 사회'로 한국과 함께 중국, 프랑스, 이탈리아를 꼽고 있다. 이들 국가는 가족 내의 결속력은 강한 반면 타인에 대한 신뢰는 낮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으며, 이들 국가에서 자주 나타나는 현상으로 가족경영과 세습경영 등을 들고 있다.
그렇다면 사회적 자본은 어떻게 축적하는가. 사람들 간의 신뢰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무엇보다 사회적 자본을 제1 우선순위에 놓는 의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누가 먼저라고 따질 것 없이 나부터 먼저 실천하면 된다. 그 중에서도 공무원을 비롯한 공직자들은 한 사회의 신뢰준거집단의 표본이라 할 수 있으므로 특히 공직자들이 신뢰회복을 위해 앞장서야 한다. 신뢰사회에서는 쓸데없는 잔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된다. 관공서 일이 있을 때 먼저 아는 사람이 없나부터 살펴보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된다. 버스 정류장에서는 줄서서 기다리면 막상 버스가 도착했을 때 줄이 무너지지 않고 차례대로 탈 수 있을 것이라는 편안한 생각으로 기다릴 수 있다.
/정 재 훈(인하대학교 경영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