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인호 (논설위원)
요즘 고구려의 흥망성쇠를 주제로 한 TV 드라마들이 인기절정이다. 주몽과 대조영, 연개소문이 그것이다. 안방을 그 시대로 옮겨 놓은 것 같아 흥미진진하다. 말을 타고 광활한 대지를 달리는 주인공들과 그런대로 볼 만한 전투장면, 간간이 얽히고 설키는 인간적 갈등과 그 해결의 과정 등 과거와는 사뭇 다른 이야기 전개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끌어들인다.

하지만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대목은 첩첩이 쌓인 난관을 굳은 신념과 의지로 타개해 나가는 극중 인물들의 지혜와 열정이다. 강한 카리스마와 함께 미래를 보는 탁월한 예지력에다 추진력, 여기에 인간미 넘치는 포용력을 지닌 주인공들이 만들어 내는 흡인력은 우리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만큼 극중 요소들이 우리의 현실정과 대비되면서 더욱 재미를 이끌어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난국을 헤쳐나가는 주인공들의 얘기에서 많은 것을 공감한다. 또 이들을 통해 대리만족을 하고있는 지도 모른다. 고구려 창건 과정을 그린 '주몽'이란 드라마는 더욱 그렇다. '한나라 군을 물리쳐야 한다'는 목표에 매진하는 주몽, 이를 추종하는 다물군들의 의지, 강철검과 철갑옷을 만들어 내는 굳건한 장인정신과 신뢰를 통해 집단을 하나로 묶어내는 주인공을 보면서 우리는 이들을 부러워한다. 대조영도 마찬가지이다. 사실이건 아니건 간에 패망한 고구려 부활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대조영의 신념과 의지에 찬 모습은 오늘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런 내용은 연개소문도 비슷하다 하겠다.

특히 이들 드라마 이면에 깔려 있는 주인공들의 나라사랑과 위민정신은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준다. 거센 외세의 침입에 대항하는 나라사랑의 마음과 함께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삶을 편하게 하는 위민정신이 스며있기 때문이다. 주인공들이 난국을 헤쳐나가는 과정에서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도처에 배어 있으며 또 그 의지를 실천하고 있는 점이다. 이런 면이 이 드라마들의 인기를 상한가로 끌어 올린 근본 이유인 셈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 실정은 드라마와는 정반대여서 너무 안타깝다. 지도력 상실의 시대라 해야 옳을 것 같다. 국가의 구심점도 없고 지도력마저 흔들리면서 모든 부분이 제각각이란 생각이다. 정치권엔 위민정신은 커녕 자신들의 안위와 세 규합에 정신이 없다. 파워게임만이 가득하며 이로 인한 갈등만 잉태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우리 모습이다.

대통령은 임기 말 레임덕 방지를 위해 자신이 만든 당을 탈당한다고 한다. 여권의 일부 세력들도 새로운 세 규합을 위해 탈당을 서슴지 않고 있으며 야당도 분위기만 다를 뿐 내용적으로는 기가 찰 정도이다. 야권의 유력 대선 후보군들은 서로 물고 물리는 이전투구가 한창이다. 검증논란에 휩싸여 서로 간의 비방과 헐뜯음만 남아 있음은 물론이다. 차기 대권에만 몰두하고 있어 국민의 삶과 안위에는 관심도 없는 것 같다. 정치권이 오히려 서민 삶에 발목을 잡는 거대 공룡집단으로 바뀐 것이다.

이러다 보니 국민과 나라를 통합하고 융합하는 수렴점이나 지도력이 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또 이런 난제들을 해결해 나가려는 의지 또한 희박하다는 느낌이다. 여기에 더욱 큰 문제는 경제불황의 도가 갈수록 심해진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거리에는 일거리가 없어 허덕이는 실업자들이 득실거리고 있다. 각박한 삶이 지겨워 자살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도처가 언제 터질지 모를 지뢰밭이다.

우리의 현실은 이처럼 답답하기만 하다. 그러면 이젠 어떻게 해야 하나. 주몽이나 대조영, 연개소문 같은 역사의 인물들을 다시 불러올 수도 없고 말이다.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지금까지 '하면 된다는 신념', '의지의 결집을 통한 역동성과 돌파력'으로 오늘의 우리를 만들어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비록 지금 이런 모든 것들이 휘청인다고 해서 그대로 주저 앉을 수는 없지 않은가. 아직 늦지 않았다. 우리의 저력인 '하면된다'는 도전의식을 갖고 다시 시작해 보길 바란다. 그래야 희망찬 미래를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송 인 호(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