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우리의 영어 사용 수준이 세계 경쟁도시에 비해 크게 뒤떨어진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영어와 관련한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크게 보면 고비용·저효율 구조, 영어교육에 대한 국민적 미합의, 공교육부분의 영어 수업 능력 부족, 평상시 영어 학습환경 미비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 구조적으로 영어를 잘 할 수 없는 환경인 것이다.
우리는 중학교 시절부터 대학교까지 10년 동안 1만5천500시간 이상을 영어에 매달린다. 전세계 토플 응시생 55만명 중 20%에 가까운 10만명이 우리나라 사람이다. 이렇게 온 사회가 영어열풍에 휩싸여 있다보니 병적인 증상이 이만저만 아니다. 영어와 관련한 사교육비는 연간 20조원에 육박한다는 통계가 나올 정도다. 특히 최근 5년 사이 총 유학생은 43만명이 늘었고, 초등학생 유학생도 8천명이나 증가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처럼 광적인 영어 학습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평균 토플점수는 전세계 147개국 중 93위(2005년) 수준에 머물고 있다. 아시아에서도 32개국 중 16위에 그치고 있다. 말하기 능력은 더욱 형편없어 세계 최하위 그룹에 속한다.
전문가들은 또 우리 영어교육이 절대적인 시간부족의 문제점도 안고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연간 30여 시간을 영어에 배정하기 시작해 고등학교에 가서 136시간을 배운다. 그러나 중국 상하이는 초등학교 1학년 때 96시간, 고3이 되면 175시간을 배운다. 말레이시아는 아예 초등학교 1학년부터 116시간 이상을 영어수업으로 배정했다. 노르웨이는 아예 437시간을 초등학교 1학년부터 영어에 매달린다.
정부가 우리의 영어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고, 그 대책을 세우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공교육 분야에서 허점이 크다는 얘기다. 실용영어 능력에 대한 사회적 수요는 급증하고 있는데, 학교영어교육 여건은 뒤따르지 못하고 있다. 전체 영어교사 중 영어로 수업할 수 있는 경우는 23%에 불과하다고 한다. 영어교사 중 78%가 영어로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는 핀란드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부분이다. 또 학부모가 바라는 영어교육 기대수준과 현실이 크게 동떨어진다. 사교육비가 급증하고, 해외 유학·연수가 늘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역, 계층 간 영어학습의 격차도 심화되고 있다. 서울 강남지역 영어 사교육비는 1인당 1억원 이상인 반면 일반 읍·면·동의 절반 이상이 영어 사교육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단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우리의 영어교육 부실은 영어를 학교 수업이나 시험의 대상으로만 여긴다는데 있다. 학생들의 경우 학교수업시간 이외에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 있지 않은 것이다.
사회 전체적인 환경이 나쁘다보니 지역의 인재와 돈이 타 지역으로 빠져나가는 악순환을 낳는다. 초등학교 4학년쯤부터 서울이나 일산, 부천 등 인천보다 영어환경이 나은 곳으로 전학을 가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고 한다. 우수한 중학생도 자립형 사립고나 특목고로 유명한 서울 강남, 경기 일산, 부천, 용인 등지로 떠난다.
우수인재의 탈인천 현상은 심각하다. 고학년이 될수록 학력 수준이 낮아지고, 대학 진학률도 크게 떨어진다. 특히 이런 탈인천 현상이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 가정에서 높게 나타나기 때문에 '돈은 인천에서 벌고, 쓰는 것은 타 지역에서 한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다. 지역경제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얘기다.
시가 시교육청과 함께 27일 '영어가 자유로운 도시 건설'을 대내외에 천명한 것은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겠다는 약속이라고 할 수 있다. 시는 앞으로 ▲영어 노출 환경 조성 ▲영어사용 인프라 개발·확대 ▲영어교육 전담기구 설립·지원 ▲공무원의 영어역량 강화 ▲우수 영어교사 확보 ▲영어교육 혁신을 위한 행·재정적 지원 ▲시민의 자발적 참여 환경 조성 ▲시민 교육 프로그램 개발·체험 프로그램 제공 등의 대안을 내세웠다.
시가 행정력을 총동원해 영어 사용이 자유로운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것은 그만큼 영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영어 사용인구는 전세계 인구의 8%에 불과하지만 전세계 GDP의 40% 정도를 영어권 지역에서 차지하고 있다. 얼마 안 되는 영어 사용인구가 세계 경제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인천이 영어권에 나가 경쟁하기 위해선 원어민 수준의 영어실력을 갖춘 인재가 많아야 하고,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인천에서 생활하기에 불편함이 없어야 한다.
이는 세계 일류기업의 국가별 진출 현황을 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2005년 기준으로 글로벌기업의 아시아지역본부는 홍콩에 1천167개, 싱가포르에 350개가 있는데, 우리 서울엔 고작 11개 뿐이었다.
인천이 영어를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어 고급인력이 상주하는 지식집약형 허브로 구축해 나가겠다는 구상을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시는 2020년까지 3단계로 나눠 펼칠 영어도시화 전략이 맞아떨어지면 영어를 사용하는 외국인이 생활하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는 '세계 도시'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관건은 시민적 합의다. 전교조나 한글학회 등을 중심으로 한 '영어화'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돌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럴 때 영어에 대한 수요가 사교육 시장으로만 몰리는 파행적 구조를 바꿀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