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경애 (인천보훈지청 보훈팀장)
지난 2월15일 미국 위싱턴의 하원 레이번 빌딩 2172호실. 미국 의회사상 처음 열린 위안부 청문회에서 할머니 세분이 위안부로 겪은 수모를 증언했다.

"일본인들은 우리가 죽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나는 죽지 않을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해방이 됐다고 하지만 아직도 우리들은 해방되지 않았다."

10대 어린나이에 이 땅에 태어난 죄로 한스런 인생을 살아온 할머니들은 이제 눈물마저 말라버려 담담한 모습으로 증언했다.

청문회를 진행한 에니 필리오마베가 아태환경소위 위원장은 평생 영어를 써 왔지만 오늘 증언을 들으니 그 비통함을 무슨 단어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할머니들의 아픔을 이해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1997년부터 지난해까지 비슷한 결의안이 여섯 차례나 제출됐지만 일본의 집요한 로비 등으로 번번이 무산됐으며 이번에도 결의안 통과 저지를 위해 범 정부차원에서 치열한 로비를 벌이고 있다고 한다.

같은 날 미국 보스턴 교회의 피스애비(Peace Abbey) 본부에서는 요즘 한창 역사왜곡 논쟁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요코이야기'의 저자 요코 가시마의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었다. 저자는 1945년 일본이 패망하자 11세의 나이로 함경북도 청진시 나남에서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겪은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11세 소녀가 바라본 전쟁의 참상을 전하는 소설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한국인들이 일본 여성들을 성폭행하는 장면을 적나라하게 묘사함으로써 전쟁 피해자인 한국인을 가해자인 듯 표현했다 하여 '보스턴 도브 세르본학교'의 한국계 학부모 13명은 지난해 11월 자전적 소설임을 주장하는 이 책이 한국인에 대한 왜곡된 묘사로 잘못된 역사인식과 편견을 심어줄 것이라며 6학년 수업교재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지역학교위원회에 요청하였으며 위원회에서는 이 문제를 재검토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이처럼 같은날 미국에서는 일본인에 의해 유발된 역사의 은폐가 이뤄지고 있었다. 아직도 일본은 끊임없이 자신의 과오를 시인하기는 커녕 감추기에 급급하며 민간인 차원에서 이뤄진 일이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한발 더 나아가 가해자와 피해자를 바꿔버리는 역사 왜곡을 서슴지 않고 있다.

더구나 '요코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서도 2005년 출간됐고 서울외국인학교에서 7학년 사회문화 과목의 교재로 사용되고 있으며, 요코이야기 기자회견장에 참석한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요코를 지지하는 사람들이었다고 하니 감수성이 예민한 미국의 학생들이 한국은 가해자, 일본은 피해자라는 인식을 갖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반면 너무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국가보훈처에서는 연두 업무보고를 통해 대통령 직속 '친일 반민족 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가 지난해 말부터 친일파 후손의 땅에 대해 국고 환수 작업에 착수했으며 환수된 땅을 팔아 우선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예우 및 기념사업에 활용할 계획임을 밝혔다.

물론 후손들의 소송과 "민주주의에서 사유재산을…" "왜 후손에까지 연좌제를…" 운운하면서 그들의 생각에 동의하는 세력들의 저항이 있겠지만 이제라도 친일파들의 재산을 환수한다고 하니 다행스럽다.

돌이켜보면, 동북공정, 독도문제 등 왜곡된 역사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야 할 과제가 한둘이 아니다.

일본의 '요코이야기'가 미국의 많은 학교에서 교재로 활용되고 있듯이 우리도 일본의 침략과 지배에서 절망하지 않고 살아남은 우리 선열들의 이야기를 발굴해서 일본의 과거만행을 전세계에 알리는 것은 물론, 왜곡사실을 알리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위안부 할머니의 청문회 소식, '요코이야기' 등 가슴 답답한 소식보다는 선열들의 민족정기를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그런 소식들이 많아지는 세상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박 경 애(인천보훈지청 보훈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