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한구 (수원대 경상대학장·객원논설위원)
지난주 국민들은 윤장호 병장의 전사로 인한 충격과 걱정 속에 보내야 했다. 폭탄테러가 남의 나라 일쯤으로 치부되던 터에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전황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는 탓이다.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해야하는 비운(悲運)도 안타까우려니와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을 헤아리면 가슴은 더욱 저민다.

그 와중인 지난달 27일 서울 강북에서 20대 젊은 처녀가 자기 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취업에 실패한 후 7년간 외부와의 단절 끝에 내린 선택이었다. 오죽 자신의 처지가 절박했으면 피붙이들에 씻을 수 없는 대죄(大罪)임을 알면서도 스스로 이승을 하직했을까. 이 사건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자살이 급증하고 '이태백'이 별스럽지 않은 상황 탓이다. 그러나 결코 가벼이 넘길 사안이 아니다.

최근 10대, 20대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사회적 자폐아, 즉 은둔형 외톨이들이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작년말 한국청소년상담원이 3천명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초등학생 2.1%, 중학생 3.3%, 인문계 고교생 6%, 실업계 고교생 8.7%, 학교 밖 청소년 12.9% 등이 은둔형 외톨이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 실패 후 오프라인과의 접촉을 끊는 20대 젊은이들의 숫자도 크게 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심지어 백발이 성성한 중장년층 폐인(?)들도 자주 발견된다. 점차 고단해지는 삶을 감안할 때 사회적 자폐아들의 숫자는 더욱 불어날 것이 자명하다.

사춘기 청소년들의 한때 방황은 애교나 멋 쯤으로 봐줄 수 있다. 문제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삶을 시작해야 할 20대 젊은이들이 스스로 폐인의 길로 접어드는 숫자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자폐아는 본인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자원낭비이다. 대안은 일자리 창출뿐이다. 그동안 정부 각 부처는 국가적 현안인 일자리를 창출한다며 경쟁적으로 그럴듯한 고용창출계획을 쏟아냈다. 지난 몇 년간 정부 각 부처가 동시다발적으로 쏟아낸 일자리창출계획에서 제시한 숫자들을 모두 합산하면 매년 44만개 등 2010년까지 총 227만개이다. 계획과 실제 결과는 정확히 일치할 수 없다. 오히려 일치하는 것이 이상하다.

따라서 이 정부의 계획대비 성과는 지나치리 만큼 실망적이다. 지난해에만도 목표에 크게 못미치는 29만여개의 일자리 창출에 그쳤다. 원인은 다른 부처의 계획을 끼워 넣어 중복 계산하는가 하면 계획입안단계에서부터 현실성 없는 목표를 설정한 때문이다. 그나마도 세금만 축내는 거품 일자리가 대부분인데다 생계에 별로 도움을 주지 못하는 등 과거 영세민 취로사업의 복사판이어서 은둔형 외톨이 축소에는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눈치이다. 오히려 국정운영을 잘 수행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정부업무평가위원회는 중앙정부 27개 부처와 21개 청을 대상으로 한 지난해 업무평가에서 일반행정, 사회문화, 외교안보분야 등을 제치고 경제분야에 최고 점수를 주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국민들은 수긍하려 들지 않는다. 웬 귀신 씨나락 까먹는 얘기냐며 실소(失笑)를 금치 못하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회부적응자들은 늘 있게 마련이다. 또한 게으름이나 자발적 실업은 나라님도 불가항력이다. 그러나 극소수를 제외하곤 이들의 정신은 지극히 건강하고 노동의욕도 확고하다. 단지 사회참여에 대한 기회비용이 낮거나 혹은 진입장벽이 지나치게 높은 때문이다. 작금 은둔형 외톨이들이 크게 느는 데는 외환위기 초래 및 국가경쟁력 약화, 이벤트성 거품일자리 창출 등 엄밀한 의미에서 정부 탓이 크다. 그럼에도 정부는 마치 은둔형 외톨이들을 배부른 자들의 한량(閑良)놀음이나 정신병 등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는 듯하다. 이런 지경이니 사회적 자폐아들의 자살이 점차 늘어날 수밖에 없다. 현대판 사회부적응자문제를 스스로 극복해야하는 소시민들의 가슴앓이가 딱하게만 여겨진다.

/이 한 구(수원대 경상대학장·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