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재다능한 예술가 홍난파는 음악뿐만 아니라 음악평론, 연극, 문학, 교육, 출판 등의 분야에서 44세의 짧은 생애를 사는 동안 보통 사람이 80~90년 평생동안 살면서 천천히 하는 일을 그리도 빨리 가려고 바쁘게 활동하면서 살았고, 우리의 곁을 떠나서 영원히 연주여행을 하고 있다.
구한말 화성시 남양에서 출생한 홍난파는 어렸을 때에 서울로 이사를 가서 서양음악을 접하게 되었는데 음악의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그는 가족과 친구를 떠나 당시 음악 선진국인 일본과 미국으로 가서 음악공부를 하고 돌아와서 가난한 식민지 조국의 음악 발전과 후진 양성을 위해 열정을 불태우는 삶을 살다가 해방의 아침을 보지도 못하고 돌아가게 된다.
우리는 홍난파가 작곡한 동요들을 어린시절 즐겨 부르고 자랐으며, 홍난파 작곡의 가곡을 학창시절에 부르면서 좋아했으며, 홍난파 작곡의 기악곡을 연주회나 방송에서 들었을때 서정적이고 애수에 젖은 선율에 감동을 하게 됐던 것이다.
아울러 홍난파가 많은 음악평론을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했다는 사실을 알았을때 오늘날 한국이 세계적인 음악 선진국이고, 한국의 젊은 성악가나 연주가들이 세계적으로 명성이 있는 음악콩쿠르에서 계속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데는 홍난파와 같이 서양음악 도입의 초창기에 남이 가지 않는 어려운 길을 개척하였던 선구자들의 땀과 노력과 정열이 있었기에 그 열매로 한국에서 배출된 많은 음악가들이 전 세계의 무대에서 위대한 활약을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지금부터 70여년 전에, 홍난파는 미국 유학을 위해서 2주동안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가기도 했으며 또 홍난파가 발행한 대부분의 음악책들은 악보나 가사를 손으로 직접 쓰고 등사판에 밀어서 제본을 해야하는 지금으로는 상상 하기도 힘든 낙후된 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홍난파는 식민지 조국을 반드시 음악 선진국으로 키우고 싶다는 신념을 열정으로 불태우면서 계몽운동을 전개했던 것이다.
이런 훌륭한 천재음악가 홍난파가 경기도 화성 출신이라는 것은 32만 화성시민의 자랑이고 긍지를 가지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이에 부응하고자 화성시음악협회는 '홍난파 탄생 109주년 기념 음악회'를 준비하게 됐다.
특히 금번 음악회가 의의가 깊은 것은 경기도의 대표 언론인 경인일보사와 화성시음악협회가 공동으로 주최함으로써 홍난파에 대한 객관적인 위상을 정립하고 국민들에게 바르게 홍보할 수 있다는 점이며 아울러 예술은 예술로 평가하고 인물의 삶은 그 삶으로 평가를 함으로써 일부 국민들이 가질 수 있는 가치관의 혼란을 피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부디 난파를 사랑하고 음악을 사랑하는 1천100만 경기도민께서 많은 성원을 보내주심과 함께 음악회에 오셔서 109년 전에 화성시 남양에서 태어나서 한국 양악사 분야에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홍난파를 음악으로 만나보고 그의 열정을 직접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으면 한다.
금번 음악회를 위해 도와준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4월 10일 오후 7시 30분 수원대학교 벨칸토 아트센터에서 여러분을 만났으면 한다.
/김 현 숙(협성대 음악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