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감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스크린쿼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100번째 작품에 대한 소감을 밝힌 임권택 감독은 "아무쪼록 곱게 잘 봐달라"고 새 영화의 설렘을 감추지 않았다.
임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은 '서편제'의 속편격이면서도 또다른 측면을 강조한 새로운 영화다. '서편제'가 소리로 승화된 한을 그렸다면 '천년학'은 소리를 타고 학처럼 날아오르는 눈먼 소리꾼 누이와 그녀를 그리워하는 한 남자의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오정해와 조재현의 뛰어난 연기에 아름다운 영상미가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킨다.
더구나 정일성 촬영감독, 김동호 조명감독 등 대한민국 영화계 최고의 장인이라 할만한 감독들과 세계적인 음악감독 양방언이 이번 작품에 참여해 완성도를 더욱 높였다. 이청준의 소설 '선학동 나그네'를 영화로 옮긴 이 작품은 '서편제'에 등장했던 동호와 송화, 이들의 아버지 유봉의 뒷얘기를 보다 세밀히 그려내고 있다.
지난 1962년 '두만강아 잘있거라'로 데뷔한 이래 임권택 감독은 공백없는 현역 감독으로 수 차례의 흥행 신기록과 국내외 각종 영화제를 석권, '최초'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붙는 '살아있는 한국 영화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1993년 한국 감독 최초로 해외 영화제(제1회 중국상해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임권택 감독은 2000년 '춘향뎐'으로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칸영화제 본선 경쟁부문에 진출한데 이어 2년후 '취화선'으로 한국 감독 최초로 감독상을 수상했다.
임 감독은 '천년학'에 대해 "사람은 만나면 반드시 헤어짐이 뒤따르게 마련"이라며 "만남과 이별을 통해 도무지 산다는 게, 만나서 기쁨을 얻는다는게 뭔가 생각하고 싶었다"고 연출의도를 설명했다.
역시나 이번 영화에서도 대사보다는 '서편제'때 이상으로 소리가 더욱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소리를 두 사람의 삶 자체에 깊숙이 끌어당겼다"고 밝힌 임 감독은 "드라마를 배제하고 소리를 극대화시켜 비애스럽고 비탄스러운 삶의 여정을 드러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또 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영화를 통해 보여줬던 임 감독은 '천년학'에서도 우리나라 구석구석에 숨겨진 아름다운 풍광들을 소리와 함께 고즈넉하게 바라보고 있다.
일흔이 되어서야 사랑을 말하는 거장 임권택의 '천년학'이 요즘 젊은이들한테 어필하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 대해 임 감독은 "얼핏 지나쳐 보면 영화가 담고 있는 이야기를 다 못 볼 수밖에 없다. 요즘 '영화는 나이로 찍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나이 든 만큼 세상을 보고, 나이가 들수록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이를 새겨서 보면 '천년학'이 품고있는 이야기에 대해 다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