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동욱 (충주대 행정학과 교수)
호두까기 인형(The Nutcracker)은 미국 뉴욕 시립발레단을 비롯한 세계적 발레단이 단골로 공연하는 명품이다. 차이코프스키의 명곡으로 인간 정신을 상징하는 작품의 하나인 넛크래커가 태평양을 건너서는 우리의 약점과 치부를 단적으로 묘사하는 말이 된 지 어언 10년의 세월이 지났다.

우리의 경우에 넛크래커는 미국의 컨설팅 기관인 부즈 앨런과 해밀턴의 한국 경제보고서에서 연유한다. 1997년 우리에게 불어 닥친 IMF 외환위기의 본질이 무엇이냐에 대한 논의가 한창일 당시 부즈 앨런과 해밀턴 보고서는 "한국경제는 저비용의 중국과 고효율의 일본의 협공을 받아 마치 넛크래커 속에 끼인 호두처럼 되었다"고 지적하며, 변하지 않으면 넛크래커 속의 호두처럼 깨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진단했다.

변하지 않으면 깨지기에 많은 진통과 아픔에도 불구하고 진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당시의 구조개혁이었고, 사회 전반에 걸친 새틀짜기이자 지난 10년 동안의 개혁이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그토록 줄기차게 추구해온 사회변혁의 대가 때문인지 10년 전에는 생경하기만 했던 신자유주의니 고용의 유연성 같은 말들이 이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가 아직도 세계문명표준에 걸맞지 못한 탓이겠지만 금년 들어서 대기업 총수가 화두로 삼은 샌드위치 코리아가 다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샌드위치 코리아는 넛크래커 보다 범위가 넓고 조금 더 정교하게 다듬어진 것이니 사실 나쁘게 진화한 것이다.

1997년 당시 넛크래커는 우리나라 기업이 처한 수출환경을 지적하는 말이었는데 점차 선진국에는 기술과 품질이 떨어지고 후발개발도상국에는 가격경쟁력이 없는 나라 경제의 단점을 대변하는 말로 자리를 잡았다. 여기서 더 나아가 샌드위치 코리아는 경제는 물론 외교, 안보, 문화, 사회 등 나라의 각 분야에 내재되어 있는 약점이나 한계를 부각하는 말이 되고 있다.

갖다붙이기 나름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넛크래커나 샌드위치가 국내외의 여러 곤궁에 처한 현실을 설명하는 데 적절한 비유인 것은 틀림없다. 예컨대, 타이거 우즈의 선택적 출전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미국 PGA의 현실도 PGA 정규투어를 후원하는 기업들과 골프 팬, 그리고 타이거 우즈 사이에 끼여 있는 샌드위치론으로 설명하면 설득력이 강해진다.

넛크래커나 샌드위치 코리아를 우리의 현실로 받아들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해법은 반도체, 가전제품, 휴대폰 등에서 세계 최고의 정보기술로 무장하여 각 분야에서 글로벌 톱 10으로 자리잡은 기업들과 자동차, 제철, 조선, 항공 등의 분야에서 글로벌 톱 10 후보군으로 약진하고 있는 기업들의 비전과 전략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 기업은 가격은 일본보다 낮고 기술은 중국보다 앞서고 있기에 이를 역(逆) 넛크래커 현상으로 부르기도 한다. 97년 이후 10년 세월동안 넛크래커가 잔존하고 샌드위치로 확대재생산되기도 했지만 그 와중에 역 넛크래커가 나타난 것은 더없이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한미 FTA 협상 타결 역시 넛크래커를 극복한 기업들에게서 향후 방향과 정책과제를 찾을 수 있다. 협상을 통해 양보한 것과 얻은 것들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되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이들을 역으로 샌드위치 시켜버리는 지혜와 비전, 그리고 전략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조선말의 타의에 의한 개국과 1960년대의 수출입국에 의한 개국에 이어 한미 FTA 협상 타결이 명실상부한 제3의 개국이 될 수 있다.

판도라 상자안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것이 희망이다. 이러한 희망을 부둥켜안고 보통 사람들은 고단한 현실을 헤쳐 나가고 있다. 마찬가지로 넛크래커와 샌드위치가 나라의 현실이든 개인의 정치 역정이든 간에 이들을 역 넛크래커와 역 샌드위치로 만드는 비전과 전략, 그리고 희망을 보고 싶다. 그것이 대한민국 전체가 역 샌드위치가 되는 길이니까 말이다.

/임 동 욱(충주대 행정학부 교수)